‘팔방미인’ 연출가 박칼린
뮤지컬 ‘에어포트…’ 공연 중
국악 넌버벌 ‘썬앤문’ 최근 개막
‘안나 카레니나’는 연습 돌입
“매번 다른 무대 올리는 게 내 일”
“아직도 연출가는 어색해요.”
25년간 그의 손을 거쳐 간 뮤지컬 작품만 70여편. 음악감독으로, 때로는 배우로, 그리고 연출가로 공연장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아직도 연출은 자신의 일이 아닌 것 같다며 “칼샘으로 불러 주는 게 제일 좋다”고 말한다. 2010년 KBS 예능프로그램 ‘남자의 자격’ 합창단 지휘를 맡아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린 공연 연출가 박칼린(50)이다. “매일 관객 앞에서 평가받는 걸 견딜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음악 공부는 평생을 해 왔기 때문에 자신이 있는데, 연출은 지금도 겁 없이 덤비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맞아요.” 국내 1세대 뮤지컬 음악감독이자 ‘장르 불문 공연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를 최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났다.
박 연출가는 그동안 방송 프로그램에 심사위원 등으로 종종 얼굴을 비쳤다. 좀 더 자세한 근황을 묻자 너무나 당연한 답이 돌아왔다. “극장에 살았어요. 새로운 걸 구상하고, 매번 다른 공연을 올리면서 사는 게 제 일이니까요.” 말 그대로 그는 극장에 산다. 연출을 맡은 창작뮤지컬 ‘에어포트 베이비’가 서울 대학로에서 공연 중이고, 또 다른 연출작으로 국악 넌버벌(비언어) 퍼포먼스인 ‘썬앤문’이 최근 개막했다. 그가 예술감독으로 참여해 내년 초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도 연습에 돌입했다.
박 연출가는 수많은 작품을 연출하면서 지키는 신념이 있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우리가 창작자에게 물어 바꾸거나 논의할 수 없지만, 동시대를 살고 있는 창작자들의 뜻은 재현이 가능하잖아요. 작품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그런 거예요. 애드리브보다는 텍스트에 충실하게, 가식 없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죠.”
이번에 연출한 ‘에어포트 베이비’도 관객들로부터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했느냐”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 그만큼 꼼꼼하고 자세하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입양됐던 아이가 생모를 찾아 한국으로 온다는 설정은 흔히 볼 수 있지만, 그 이야기를 풀어 가는 과정은 박 연출가만의 연출관이 녹아 있다. 주인공 조쉬는 실제로 유대인 집안으로 입양 보내진 남자 아이와 백인 집으로 보내진 여자 아이를 섞어 탄생한 인물이다. 조쉬의 조력자 역할을 하는 딜리아는 박 연출가가 15년 전 서울 이태원동에서 만났던 인물을 떠올리며 작가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대본상 조력자가 필요한데 경찰, 간호사, 복지원 직원 등 다양하게 고민했어요. 그런데 여성이 조력자가 되면 러브스토리로 오해할 수 있어 풀지 못하다가 예전에 우연히 들어간 바에서 만났던 게이 할아버지가 생각난 거예요.” 무대 위에서 딜리아가 입고 있는 하늘하늘한 원피스도 당시 그가 입었던 옷에서 따 왔다. 헝클어진 머리와 액세서리, 생물학적 성별이 모호하지만 그건 인물의 됨됨이를 표현할 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대한민국 최초 게이였을 거라고 얘기하던 모습, 대화를 나누며 느꼈던 따뜻한 마음이 딜리아를 탄생시켰어요.” 작품에서 딜리아는 조쉬가 가족을 찾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시간이 지나며 모습이 변한 이태원의 아쉬움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박 연출가가 참여하는 공연은 장르와 규모, 공연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는 “연극이든 발레든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스스로 새로운 배울 것이 있는지, 스태프들과 함께 풀어 나갈 숙제가 있는지를 보면서 작품을 한다”고 말했다. ‘에어포트 베이비’는 10여년 전 인연을 맺어 사제지간처럼 지내 온 두 지인이 작가와 작곡가로 내놓는 첫 작품이다. 박 연출가로서는 “인도를 잘 해 왔는지, 개인적 숙제가 있는 작품”이다.
“애드리브보다는 텍스트에 충실
가식 없는 작품 선보이려 노력
관객이 실컷 놀고 가도록 할 것”
‘썬앤문’은 국악을 전공했던 박 연출가에게 의미가 각별하다. 그동안 국악방송에서 오래 연출을 맡아, 명인 명창과 함께하는 공연은 많이 해 봤다. 그러나 “젊은 친구들을 위해 뭘 만들어 주고, 무엇을 같이 해 줬나”라는 고민을 하게 되면서 ‘썬앤문’을 탄생시키게 됐다. “전통을 변형한다는 데서 일단 힘들죠. 하지만 완벽하게 준비될 때까지 기다렸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일단 덤볐어요.” 여성 국악인 6명이 모여 국악 그 자체를 즐겁게 들려주는 무대다. “국악인들이 오고무와 같은 퍼포먼스를 훈련 받아서 직접 보여 줘요. 악기도 개조하지 않은 국악 그 자체지만, 무대 구성과 창작국악을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죠.”
2014년 초연 뒤 매해 공연을 이어 오고 있는 ‘미스터쇼’는 구성과 연출을 맡았다. 여성의 성적 본능은 여전히 대놓고 드러낼 수 없는 한국 문화 속에서 “그런 본능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고 나와 유쾌하게 놀고 갈 수 있는 공연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공연과 함께한 시간이 많이 쌓였지만 그는 늘 “스스로 부딪혀 보자”는 생각으로 작품을 시작한다. 그의 공연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공연장에서 사는 박칼린 연출가는 내년에도 쇼뮤지컬과 대형뮤지컬, 무용의 연출을 맡을 예정이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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