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두 살인 ‘두령이형’의 배포는 컸다. 짓궂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험난한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해 말 서울 신림동에 등장한 두렁이형은 같은 처지였던 ‘앤소니형’, ‘빅나루토’와 함께 그렇게 고양이들만의 영역을 지켜갔다.
이런 두령이형을 눈 여겨 본 게 지금의 보호자 박경민(30)씨다. “이렇게 두령이와 인연을 맺을지 상상도 못했어요. 애들도 잘 지키고, 머리도 크고, 몸집도 커서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두령’(頭領)이라는 이름을 붙여줬죠.”
지금은 따뜻한 집에서 사는 어엿한 ‘집고양이’지만, 박씨를 만나기 전까지 두령이형은 얼굴에 시커먼 먼지를 묻히고 다니던 길고양이였다. 박씨는 지난해 12월 얼굴에 깊은 상처가 생긴 두령이형을 발견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치료를 해주면서 집까지 자연스럽게 데려왔다고 했다. 길고양이들에게 틈틈이 밥을 챙겨줬던 박씨는 두령이형과의 만남을 계기로 직장을 나와 본격적인 ‘길고양이 집 만들기’ 사업에 전념하게 됐다.
길고양이들에게 안식처를 만들어 주기 시작한 박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에 두령이형을 의인화 시킨 일기도 꾸준하게 올렸다. 네티즌들도 두령이형의 일기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실제 두령이형의 일기는 SNS에 게재될 때마다 1,000개가 이상의 공감을 받았다. 현재 이 SNS는 약 1만명 이상의 팬을 보유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덕분에 ‘길고양이 집 만들기’ 사업과 관련한 입소문이 퍼졌고 풍족하진 않지만 생계에 필요한 수익도 나오고 있다.
일기에서 두령이형은 박씨와 보통 사소한 대화를 나눈다. 날씨가 따뜻한 날에는 날씨에 대한 얘기를 하고 목욕을 하는 날에는 당시 느꼈던 불쾌한 기분을 털어놓는다. 물론 두령이형이 하는 말들은 박씨가 두령이형 표정을 살핀 뒤 만들어낸 허구다. “두령이형 시선으로 풀어가는 거죠. 저는 예전부터 고양이 입장에서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두령이형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박씨가 만드는 길고양이 집 ‘두령 1호’로 이어졌다. 겨울 추위로 고통스러워하는 길고양이를 위해 만들어진 집이다. 이름은 당연히 두령이형에서 땄다. 가로 47㎝, 세로 43㎝. 마치 우유팩을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의 ‘두령 1호’는 두령이형의 체취가 묻어있다. 집 제작에 적극 참여했기 때문이다. 두령이형의 집 제작 과정은 모두 박씨 손을 거쳐 두령이형 일기에 실렸다. “일기를 보고 두령이형을 봤던 분들이 이제 ‘두령 1호’ 얘기를 듣고 응원해 주세요. 길고양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본인이 사서 쓰지 않아도 구입한 후 주위에 나눠주기도 하죠.”
“사람을 배려하는 길고양이 집”이라는 설명이 붙은 ‘두령 1호’에는 길고양이를 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해줬으면 좋겠다는 박씨 마음이 반영됐다. “거리를 예쁘게 만들어주는 그런 길고양이집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면 ‘길고양이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조금은 이해해주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한 거죠.” 박씨는 ‘두령 1호’를 완성한 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무료로 제공하거나 집 근처 길고양이를 위해 직접 집을 설치해줬다. 그는 이런 노력들이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을 바꿔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마음만큼 상황이 따라주지 않을 때도 있었다. ‘두령 1호’가 갑자기 사라지거나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과 마찰이 생기기도 했다. “생각대로 흘러가지가 않았죠. 그래서 더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하는 것 같아요.” 박씨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은 결국 ‘이해’에 있다고 했다. “이렇게 추운 겨울이면 따뜻하게 몸을 녹일 곳이 없어 죽는 길고양이들이 많아요. 길고양이들에게는 죽고 살고의 문제죠. 조금만 이해를 해주면 좋겠어요.”
‘두령 1호’로 길고양이들과 인간의 공존을 꿈꾸는 박씨는 오늘도 ‘두목’ 두령이형과 하루를 보내고 있다. “두령이의 일기, 제목 ‘인터뷰 사진’. 후훟. 내 왼발 라인을 찍어봐. 기가 막히니깐” 이순지 기자 seria112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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