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링’이란 단어조차 생소하던
1990년대 초반 한국에 보급
“가족끼리 하는 스포츠 있다”
아들ㆍ딸ㆍ친구 등 설득해 시작
경북체육회, 평창출전권 싹쓸이
여자팀 감독은 딸, 아들은 선수
대표팀 전체가 가족ㆍ지인 구성
“경기장 문제로 연습 등 부족
올림픽 위해 모두 힘 합해야”
개척자를 뜻하는 ‘파이오니아(pioneer)’는 중세 라틴어 ‘pedo(넓은 발을 가진 사람)’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두 다리의 힘만으로 황무지를 일궈 쓸모 있는 땅으로 만든다는 의미에서 보면 ‘컬링의 개척자’로 김경두(61) 대한컬링경기연맹 전 부회장을 꼽는데 이견은 없을 것 같다.
컬링은 브룸(브러시)으로 얼음판을 닦아 20kg의 스톤을 하우스(둥근 표적) 중앙에 가깝게 붙이면 이기는 경기다. 경기 전 빙판에 물을 뿌리고 살짝 얼리면 표면에 페블(얼음알갱이)이 생기는데 스위핑(브룸으로 얼음판을 닦는 동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페블이 없어지며 스톤의 속도와 방향이 바뀐다. 다양한 작전 구사와 두뇌 싸움이 묘미라 흔히 ‘얼음판의 체스’라 불린다. 컬링은 한국에서 여전히 비인기 종목이다. 그러나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때 여자대표팀이 비록 메달은 못 땄지만 미국, 러시아 등 상위 팀들을 격파하는 모습이 생생히 중계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내년 2월 평창올림픽에서도 남자와 여자(4인조), 믹스더블(혼성 2인조) 등 3종목이 펼쳐지는데 한국은 메달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경두 전 부회장은 컬링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1990년대 초반, 컬링을 한국에 보급한 사람이다. 22일 경북 의성에 있는 경북컬링훈련원에서 본보와 인터뷰한 그는 “사람들이 자꾸 ‘킬링’이라고 해서 ‘킬’이 아니라 ‘컬’이라고 정정하는 게 일이었다“고 웃었다. 레슬링 선수 출신인 김 전 부회장은 동아대 대학원 시절부터 컬링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나도 인생의 후반기를 설계할 시기였다. 남들은 ‘돈키호테’같다고 했지만 한국에 없는 새로운 분야에 젊음을 바치고 싶었다”며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여가 시간이 늘어나는 20~30년 후에는 컬링이 국민스포츠로 활성화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국내에는 컬링장이 없어 대구빙상장을 거점으로 삼았다. 컬링을 할 줄 아는 사람도 없어 김 전 부회장은 “가족끼리 뭉칠 수 있는 재미있는 스포츠가 있으니 같이 하러 가자”며 아내와 아들, 딸 그리고 친구, 친구의 자녀까지 꼬드겼다. 그 때 김 회장의 꼬임(?)에 넘어가 지금은 컬링인이 돼 버린 유도 선수 출신인 오세정 경북컬링협회장은 “고향 친구가 도와달라니 외면할 수 없어 따라 나섰는데 어느 순간 나와 가족들도 컬링에 빠져버렸다”고 미소 지었다. 아이스하키나 스피드스케이팅 연습이 없는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 새벽에 주로 연습했다. 훈련을 마친 새벽에 청소차를 보는 게 일이었다. 빙상장 관리자에게 통사정해서 특수페인트로 하우스를 두 개만 그리기로 허락 받고는 네 개를 그렸다가 “여기가 컬링장이냐”며 타박을 받기도 했다.
1997년 컬링의 본고장 캐나다로 첫 해외 연수단을 꾸렸다. 토론토 부근에서 수준이 그리 높지 않은 대회가 열렸는데 알음알음 후원을 받아 겨우 팀을 꾸려 참가했다. 여러 곳을 경유하는 가장 싼 항공편을 수소문했고 선수들도 각자 힘을 보태겠다며 라면을 한 박스씩 가져와 이고 지고 떠났다. 김 전 부회장은 “교민들이 물심양면 도와준 덕에 무사히 대회를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동료 교수들은 컬링에 미쳐 툭하면 밖으로 나도는 그를 보며 “무슨 감투를 쓰려고 저러느냐”고 수근 댔지만 개의치 않았다.
컬링이 한국에서 제대로 뿌리를 내리려면 전용연습장이 필요했다. 하지만 컬링을 위해 연습장 부지를 내놓겠다는 지자체는 없었다. 김 전 부회장은 고향인 의성에 있는 자신의 조그만 땅을 기증하겠다는 문서를 써서 경북도청과 의성군을 찾아가 건립비용만 보태달라고 사정했다. 김 전 부회장의 끈질긴 노력 덕에 경북도가 11억 원, 경북컬링협회가 16억 원을 부담하고 의성군이 부지를 제공하고 3억5,000만 원을 보태 2006년 국내 최초 컬링전용경기장인 경북컬링훈련원을 지었다. 이곳은 ‘한국 컬링의 메카’다.
팀워크가 중요한 컬링은 일반 종목처럼 각 팀에서 국가대표를 뽑지 않고 선발전에서 성적이 가장 좋은 팀이 국가대표가 된다. 지난 5월 평창올림픽 선발전에서 경북체육회 3팀이 남녀와 믹스더블 출전권을 싹쓸이했다.
경북체육회 김민정(36) 여자팀 감독은 김 전 부회장의 딸이고 장반석(35) 믹스더블팀 감독은 사위이자 김민정 감독의 남편이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매년 1억 원 가까운 수익을 올리던 대구의 나름 잘 나가던 입시학원 원장이었던 장 감독은 장인의 요청으로 컬링을 도우러 들어왔다가 평창까지 가게 됐다. 뿐만 아니다. 여자팀 선수인 김영미(26)와 김경애(23)는 자매, 믹스더블 이기정(22)과 남자팀 이기복(22)은 쌍둥이다. 남자팀 선수 김민찬(31)은 김 전 부회장의 아들이고 김창민(32)과 오은수(32)는 의성고 동창인데 오은수가 오세정 회장의 아들이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겠지만 해외에서도 컬링은 대표적인 패밀리 스포츠다. 경북체육회가 독식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에 대해 장 감독은 “그래서 더 혹독한 검증 과정을 통과해 대표팀에 선발됐다”며 “외국대표팀도 부녀나 부부가 팀을 이뤄 나오는 일이 흔하다”고 설명했다.
30여 년 전 척박한 땅에 컬링의 씨앗을 뿌렸던 김 전 부회장은 2018년 한국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릴 거라는 걸 예상이라도 한 걸까. 한국 컬링의 눈부신 발전을 보며 누구보다 뿌듯해야 할 그는 하지만 이 질문에 얼굴이 굳어졌다. 컬링연맹은 체육회 감사 결과 자격 없는 선거인단이 참여한 것으로 확인돼 지난 6월 전임 장문익 회장의 직무가 정지되고 8월 관리단체로 지정되는 등 내홍에 빠져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선수들은 올림픽 준비에 박차를 가하지 못했고 홈 어드밴티지가 중요한 종목인데 경기장 바닥에 문제가 생겨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강릉컬링센터를 이번 달에만 잠깐 사용할 수 있다. 두 달 사이 체중이 15kg 빠졌다는 김 전 부회장은 “30년 전 발로 뛸 때는 몸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마음이 괴로워 더 힘들다”며 “앞으로 남은 기간만이라도 선수들이 올림픽에만 ‘올인’할 수 있도록 모두 힘을 합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의성=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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