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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폭탄에 매각, 백년기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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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폭탄에 매각, 백년기업은 없다

입력
2017.11.23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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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더스ㆍ농우바이오ㆍ쓰리세븐 등

유망 중소ㆍ중견기업들 지분 팔아

1500억 모두 내기로 한 오뚜기

일감 몰아주기로 재원 마련 편법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국내 최대 콘돔 제조사이자 한 때 세계 1위였던 ‘유니더스’가 매각된 이유가 상속세를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과도한 상속세 부담이 우리나라 유망 중소ㆍ중견 기업인의 경영 의욕을 꺾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보다 많은 장수 기업들이 우리 경제의 기초를 지탱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유니더스 김성훈 대표는 지난 11일 회사 보유 주식 중 300만주(지분율 34.88%)를 바이오제네틱스투자조합외 1인에게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김 대표는 창업주인 선친 김덕성 회장이 2015년 별세하면서 물려받은 100억 원이 넘는 회사 주식 (304만4000주)에 대해 50억 원이 넘는 상속세를 부과 받았다. 김 대표는 한 때 세금 분할 납부를 신청하며 회사 경영 의지를 밝히기도 했지만 상속세 낼 재원이 부족해 결국 경영권을 매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니더스처럼 기업을 물려받은 창업주 2세가 상속세 낼 돈을 마련하지 못해 회사를 매각한 사례는 적지 않다. 국내 1위 종자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과중한 상속세 부담으로 주인이 바뀐 ‘농우바이오’ 가 대표적이다. 1967년 설립된 이 회사는 창업주 고희선 회장이 2013년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상속세 문제에 휘말렸다. 당시 농우바이오 매출액은 676억원, 종업원은 403명 정도였지만 유족들에게 부과된 상속세는 1,000억원이 넘었다. 상속세를 낼 돈이 없었던 유족들은 회사를 매각해 상속세를 내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 1위 손톱깎이 업체 ‘쓰리세븐’도 창업주 김형규 회장이 2008년 유명을 달리하면서 유족들에게 약 150억원의 상속세가 부과됐다. 유족들은 가업을 승계하는 대신 회사 지분을 매각했다. 특히 상속세 납부를 위해 회사 매각이 촉박하게 추진돼, 쓰리세븐은 회사 적정 가치보다 낮은 180억원에 매각되고 말았다.

최근 가업 승계를 마친 한 중견기업 대표는 “승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갑자기 수백, 수천억원의 상속세를 내라는 것은 기업을 팔라고 등을 떠미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가업 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만 볼 게 아니라, 백년기업을 위한 기술과 책임의 상속이라는 측면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과도한 상속세와 엄격한 규제가 기업들을 편법에 나서도록 부추기기도 한다. 1,50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모두 납부하기로 하면서 착한 기업의 대명사가 된 오뚜기도 이런 압력을 벗어나지 못했다. 오뚜기 계열회사 ‘오뚜기라면’은 지난해 매출(5,913억원)의 99%를 오뚜기와 내부 거래를 통해 올렸다. 오뚜기라면이 제품을 생산하면 오뚜기가 이 제품을 사들여 외부에 판매하는 형식으로 계열사 오뚜기라면의 매출을 손쉽게 올려주고 있는 것이다.

비상장 회사인 오뚜기라면의 최대주주는 함 회장(35%)으로 사실상 일감 몰아주기 편법으로 대주주 일가의 부를 늘리고 있는 셈이다. 공정거래법상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은 ‘자산 5조원 이상 기업’이어서 오뚜기의 일감몰아주기가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갓뚜기(God+오뚜기)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던 많은 사람들이 오뚜기의 일감몰아주기 행태에 실망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재계는 오뚜기가 ‘무늬만 착한 기업’이라는 비판을 들으면서도 일감 몰아주기를 하는 것을 상속세 재원 마련과 연관이 깊다고 보고 있다. 함 회장은 지난 3월 본인이 보유한 오뚜기 주식 37만5,000주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공탁했다. 강남세무서에 오는 2022년까지 5년간 분할 납부하기로 한 상속세 1,500억원에 대한 담보제공 성격이다. 담보로 맡긴 주식 37만 여주는 함 회장이 보유한 오뚜기 주식의 38% 정도로 함 회장의 회사 지배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준이다.

재계 관계자는 “만약 함 회장이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담보로 맡긴 주식을 그대로 매각한다면 그의 전체 회사 보유 지분율은 20% 이하로 떨어져 회사 지배력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함 회장이 지분 매각 없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편법적 방안이라도 동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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