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업상속공제 연 62건
독일 1만7000건에 달해
차등 의결권 등 보완책 여론도
기본적으로 상속 세율을 낮게 유지하거나 폐지하고 있는 주요 선진국들은 기업 자산에 대해서는 상속세를 면제 해주는 공제 혜택 범위를 폭넓게 인정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가족 기업 비중이 높은 독일의 경우에는 상속 공제 혜택을 주는 데 별도의 제한이 없다. 가족 기업 비중이 낮은 영국도 상속 공제 혜택을 부여할 때 ‘물려주는 피상속인이 상속 직전 2년간 소유하라‘는 조건만 달아놨을 뿐 상속 공제대상이나 공제한도 등에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았다. 이러한 폭넓은 공제 혜택은 선진국의 뛰어난 가업 승계 실적으로 연결된다.
22일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5년(2011~2015년) 간 우리나라의 가업상속공제 결정 건수는 연평균 62건에 불과한 반면, 독일은 우리나라의 약 280배인 1만7,000여건에 달했다. 공제금액도 우리나라는 5년간 연평균 859억원에 그쳤으나, 독일은 434억 유로(약 56조 3,000억원)로 우리나라보다 650배 많았다.
독일이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갖고 있고 글로벌 시장 1위 중소기업인 ‘히든챔피언’을 많이 배출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우리도 독일식 가업상속공제제도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주요 국가에 비해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 우리나라 상속 세율도 기업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 원인 중 하나다. 가업을 승계할 때 상속 및 증여세율은 1억원 이하 10%, 10억원 이하 30%, 30억원 초과 50% 등 과세표준에 따라 10~50%로 결정되는데, 최대주주의 경우 할증 평가를 통해 최대 65%의 세율이 매겨지기도 한다. 농우바이오나 쓰리세븐처럼 회사 주식을 물려받은 후손에게 별다른 재산이 없다면 세금 납부를 위해 회사 주식을 매각하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국제적으로 가장 높은 상속세율(65%)은 기업경영에 장애 요인이 되는 만큼, 상속세는 중소ㆍ중견기업 활성화와 대기업으로의 성장이라는 기업 선순환을 위해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것이 맞다”며 “2000년대 들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7곳이 상속세를 폐지하는 등 상속세 폐지ㆍ축소는 국제적 추세에도 부합하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가업 승계를 ‘부의 대물림’이라는 부정적 시각으로 보는 국민정서가 강한 상황에서 외국처럼 당장 상속세를 인하 하거나 폐지하는 건 불가능 하다는 지적도 많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당장 실현 가능한 보완책을 마련해 중소ㆍ중견 기업의 안정적인 가업 승계를 유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현재 학계와 정치권 등에서는 가업승계 기업에게 차등 의결권을 보장하는 ‘황금주’ 발행 등을 허락하거나, 창업주 가족이 공익재단에 주식을 넘기고 경영권을 계속 행사하도록 하는 방안 등을 보완책으로 거론하고 있다.
이홍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는 “상속세율이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가 높은 건 사실이지만 기업 승계에 대한 부정적 국민 정서를 감안하면 상속세 폐지나 완화는 빨라야 20~30년 후에나 가능한 일”이라며 “유망한 벤처, 중소ㆍ중견 기업의 영속적 발전이 필요하다는 데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으니 이들 기업에 한해 차등의결권을 보장하는 등의 보완책을 서둘러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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