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 분진으로 몸이 찌들어도 치료받지 못하고 ‘산업폐기물’로 살아야 하는 것이 과연 정부의 복지정책인가?”
-“폐렴으로 숨쉬기조차 힘든 탄광 근로자들에게 의료지원 및 생활비보조 혜택 주어야” 한 목소리

■ 책임 있는 지역사회 공직자들 앞에서 결의문 구호 함께 외쳐
“폐렴을 진폐 합병증으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한다”
광부들의 눈물어린 호소가 연말을 맞는 우리 사회에 신문고 북소리처럼 울려 퍼지고 있다. 진앙지는 1960년대부터 대한민국 석탄산업의 중심지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강원도태백시의 태백문화예술회관.
지난 10월18일, 이 자리에서는 (사)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회장 황상덕) 소속 전국 회원 중에서 1,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2차 정기총회가 열렸다. 이들은 모두 ‘제1호 산업전사’로 불렸던 탄광근로자들.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올해도 어김없이 이들이 ‘제발 아픈 몸을 치료해달라’는 다섯 개 조항의 결의문을 외쳐야 했다는 점이다. 탄광 막장에서 노력한 만큼의 진폐보상연금과 진폐재해위로금을 받게 해주고, 몸이 더 이상 굳지 않게 제 때 병원치료를 받을 수 있게 게 해달라는 요청이다.
하지만 이는 2008년 이후 10년째 되풀이되는 대답 없는 메아리다.
그래도 두 손을 불끈 쥐고, 간신히 나오는 목소리를 외쳐야 하는 것은 그들의 몸 상태가 자칫 회복불능의 상태로 악화될까 염려해서다.
각지에서 속속 모여든 회원들은 협회 김용환 감사의 선창으로 다음과 같은 5개항 결의문을 ‘목 놓아 합창’했다.
하나. 폐렴을 진폐 합병증으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한다.
둘. COPD(만성 폐쇄성 폐질환) 대상자의 판정기준을 완화하라.
셋. 진폐 정밀검사 결정기간을 단축할 것을 요구한다.
넷. 진폐환자 사망시 진폐진단이 아니더라도 장의비는 지급하라.
다섯. 진폐 재해자를 국가유공자에 준하는 예우를 해줄 것을 요구한다.
책임 있는 지역사회 공직자들도 그 자리에 참석, 생생한 외침의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행정당국의 관심부족 때문인지, 아니면 입법 정책기관의 손길부족 때문인지 이들의 애타는 호소 속에는 탄광 막장 속의 공허한 여운과 늦가을의 쓸쓸함만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 김연식 태백시장 “정부 정책지원과 의료혜택 향상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
한국진폐재해재가협회 회원을 포함해 탄광 근로자들이 관계당국에 요구하는 가장 시급한 문제는 폐렴의 진폐합병증 인정.
현재 진폐 합병증으로 공식 인정받고 있는 9대 질환은 ▷활동성 폐결핵 ▷기관지 확장증 ▷감염에 의한 흉막염 ▷폐기종(심폐기능이 경도장해 이상인 경우) ▷기흉(공기가슴증) ▷폐성심 ▷기관지염 ▷원발성 폐암 ▷비정형 미코박테리아 감염 등.
따라서 폐렴 광부들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폐렴이 진폐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성립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객관적인 의학적 소견’을 제출하고, 이를 근로복지공단 등 관계기관에서 인정하는 경우에야 진폐보상연금이나 진폐재해위로금 등의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처지다.
지난 1985년 정부가 ‘진폐의 예방과 진폐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면서, 폐렴을 제외한 9개 질환이 합병증에 이환될 경우에 한해 진폐전문 요양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 수정되지 않고 있는 상태.
이에 대해 협회 교육고문을 맡고 있는 종합법률법진 박용일 고문은 “그 결과 상당수의 폐렴 탄광노동자들이 치료와 보상금 지원 등 산재보상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살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2001년 판례(서울행법 2000규 28830)에서는 “탄광근로자가 근무하면서 진폐증이 발병했고, 신체기능 및 면역기능의 저하로 폐렴에 걸려 사망한 경우도 업무상 질병에해당된다”는 법원의 첫 판결 사례가 있었던 만큼 폐렴과 진폐증과의 연관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는 것.
황상덕 회장 역시 “전국에서 3~4천 명에 이르는 탄광 광부들이 폐렴으로 숨을 헐떡이며 살고 있음에도 불구, 관련법규에 명시된 ‘진폐증으로 인한 합병증이 없다’는 이유로 정부 지원에서 소외된 채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에너지 자립을 위한 시대적 구호로 말만 ‘산업전사’로 추켜세웠을 뿐 석탄 분진으로 폐렴 광부들의 폐가 썩어가는 처지에 있어도 치료도 변변히 받지 못한 채 용도 폐기된 ‘산업폐기물’로 대우받는 것이 과연 정부의 복지정책이냐는 항변이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에는 폐렴 광부들도 ‘재가’ 회원으로 등록돼 정부와 국회 등 관계기관의 정책적 변화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재가 진폐환자’는 폐렴환자의 경우와 같이 법에 규정된 합병증이 없는 진폐환자를 말한다. 대신 정부로부터 산재보험을 받으며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합병증 있는 진폐환자’는 ‘입원 진폐환자’로 부른다.
이날 행사장에는 김연식 태백시장을 대신한 송영선 부시장, 태백시 의회 심용보 의장 및 이한영 부의장 등 기관장과 단체장, 유관기관 관계자 등 탄광촌을 리드해나가는 유수의 지역 공직자들이 참석했다.
우수 회원들에 대한 표창장 수여와 격려 차원이었다. 그래서 송영선 부시장은 “이번 총회가 회원들의 단합과 화합의 장으로 승화되어 회원들의 권익증진과 복지증진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송 부시장은 김연식 태백시장의 환영사를 대독하기에 앞서 자신의 아버지가 진폐증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사망하고, 큰형도 진폐 치료를 위해 현재 병원에 입원해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김연식 태백시장은 환영사를 통해 “지난 세월 광부 회원들은 국가발전의 에너지이자 전 국민의 연료인 석탄을 생산함으로써 오늘날의 선진국 기틀을 마련하게 됐다”고 공로를 치하했다.
김 시장은 그러나 “그 같은 영광 뒤에서 진폐라는 병마와 싸우면서 치료에 의존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이어 “진폐 환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정부 정책지원과 의료혜택이 향상될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 지혜있게 대처하자”고 강조했다.
축사에 나선 심용보 시의회 의장은 “광부 회원들의 값진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우리가 있다”고 공로를 치하하고, “진폐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회원들의 노고에 보답하는 사회적 관심과 정부차원의 현실적 지원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심 의장은 이어 “시 의회에서도 진폐 회원 여러분들의 권익신장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 ‘재가 진폐환자’와 ‘입원 진폐환자’와의 지원 차별 없어져야
이번 총회에서는 오랜 세월을 탄광 막장에서 살아온 협회소속 ‘산업전사’들에 대한 관계기관의 표창이 있었다. 또한 자신도 어려운 실정임에도 불구, 동료 광부들의 업무상 질병 치료와 권익신장을 위해 노력해온 우수 회원에 대한 표창장도 함께 전달됐다.
염동열 국회의원(태백.횡성.영월.평창.정선 지역) 표창은 김억수 부회장(80. 태백시 태백골3길), 신상선 홍보부장(60. 태백시 편들길), 이영조 대의원(78. 태백시 번영로) 등 3명이 수상했다.
또한 김연식 태백시장 표창은 김영태 대의원(57. 태백시 고원로), 황성진 대의원(58. 태백시 태백골4길) 2명이 수상자.
시의회 심용보 의장 표창은 김경집 대의원(66. 태백시 고원로), 남병도 대의원(82. 태백시 황지로), 홍기준 대의원(77. 태백시 서황지로), 천태식 대의원(79. 태백시 상철암길) 등 4명이 수상했다.
국회의원 표창을 수상한 김억수 부회장은 80년대 중반 삼척시 도계읍 삼마광업소에 근무할 당시 갱도를 지탱하는 갱목을 지고 가다 허리를 다쳐 팔십 평생이 넘도록 거동이 불편한 채 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장해7급 판정을 받은 진폐증. 채탄 막장에서 근무하다 생긴 이 병으로 늘 헉헉 숨이 찬 고통의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저녁이면 가슴깊이 저며 드는 흉통으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처지.
그래서 “정부에서 우선 진폐환자를 성의껏 보살펴 주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고, 지역에서도 책임 있는 분들이 나서 지역 진폐환자들의 고충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치료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수상 소감을 밝혔다.
시의회 의장 표창을 수상한 김경집 대의원은 40여 년간 태백시 보성광업소와 태백광업소에서 주로 채탄과 굴진 작업을 해왔다. 아니나 다를까? 그 역시 석탄 분진을 들이마신 결과로 진폐장해5급 판정을 받아 평생을 약으로 살고 있는 처지다.
그의 생활비는 국민연금 40여 만원, 진폐보상연금 90여 만원을 합한 140만원 정도가 전부. 그 돈으로 가족들이 먹고살아야 하는 생활비와 병원비 등 기초생활 비용을 충당하고 나면, 따듯한 방한복이나 월동용 연탄을 구입하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

■ “진폐환자 복지증진에 앞장” 협회장과 고문에 고객만족 대상 수여
그는 자신의 진폐증을 “고칠 수도 없는 병”이라고 스스로 단정했다. 그러니 폐렴 환자들을 진폐 합병증 환자로 인정해 빨리 병원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는 것.
진폐보상연금이라도 받는 사람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 같은 차등정책이 과연 최선 이겠느냐는 견해다.
또한 이날 총회장에서는 ‘2017 고객만족 대상’ 우수봉사상도 전달 됐다. 금년도 수상자로는 진폐환자를 위한 복지증진에 노력해온 한국진폐재해재가환자협회 황상덕 회장, 진폐환자를 위한 법률정보서비스 정보지원에 힘써온 종합법률법진 박용일 고문이 선정됐다.
이들은 석탄생산에 나섰던 탄광근로자들은 물론 산업근로자들이 근로 중 또는 퇴직 후 진폐증을 비롯한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을 직시하고, 이들이 적절한 법률적 지원과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온 공로가 인정됐다.
황상덕 회장은 탄광 근로환자들의 사회적 권익 증진을 위한 협회를 구성, 법적 구호활동을 벌임으로써 계층 간 사회적 갈등요인 제거에 앞장서왔고, 탄광 근로성과를 적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노력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국가경제 발전에도 크게 기여해왔다.
박용일 고문은 협회 근로교육을 담당하면서 산재보상보험법 및 근로기준법 등 관련법률 기준에 근거, 산재 근로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고 산재보상금 수령 등 국가가 정한 공공 복지혜택을 제 때에 받을 수 있도록 법률정보 관련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요인과 통합에 크게 기여해왔다.
유승철 객원기자 cow242@beauty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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