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120만대 초과 물량에 5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수입 세탁기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권고안을 마련해 국산 세탁기 수출 전선에 비상등이 켜졌다.
세이프가드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피해 최소화를 위한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양사가 미국에 설립 중인 세탁기 공장이 그나마 타격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이지만 내년 2월쯤 발효될 세이프가드 최종 수위에 따라 피해 규모가 결정될 전망이다.
22일 가전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연간 미국에 수출하는 세탁기는 200만대를 상회한다. 할당량(쿼터)인 120만대 초과분에 50%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수출물량의 절반 이상을 현지에서 만들라는 의미다. 3년 차 쿼터가 채 10만대도 되지 않는 부품 역시 현지 생산이나 조달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세탁기 관세 부과 기준인 120만대는 삼성ㆍLG전자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국내 다른 가전업체와 해외 업체들의 세탁기 수출량을 모두 합친 거라 삼성ㆍLG전자가 현재처럼 1%대 관세로 수출할 수 있는 세탁기 대수는 120만대보다 훨씬 적어질 수 있다. 120만대는 미국 통관 순서라 업체들 간에 한대라도 더 수출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삼성전자는 대형 가정용 세탁기를 태국과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하고 국내 생산은 하지 않는다. 국내에서 만들어 미국으로 보내는 세탁기가 전체 수출량의 20% 정도인 LG전자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지만 3억8,000만달러를 들여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뉴베리카운티에 구축 중인 세탁기 공장 가동시기가 내년 1분기라 다소 안도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는 공식적으로 연간 생산 규모를 밝히지 않았지만 투자 규모로 미뤄 LG전자 생산량(연간 100만대 이상)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공장이 본궤도에 오르기까지 통상 1, 2년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이 기간이 삼성전자에게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LG전자는 테네시주 몽고메리카운티에 건설하는 세탁기 공장 가동 시기가 2019년 상반기라 관세 충격을 더 크게 받을 수 있다. 생산설비에 한계가 있어 국내 생산량 확대가 어려운 LG전자는 내년 하반기 가동이 가능하도록 미국 공장 건설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현지 공장을 가동해도 쿼터 이내 물량에 관세 20%를 부과하는 안이 채택되면 최악의 상황이 펼쳐진다. 세이프가드 최종 결정권자가 자국 우선주의를 주창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란 것도 불안요인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강성천 통상차관보는 이날 서울 한국기술센터에서 삼성ㆍLG전자 관계자 등과 민관합동 대책 회의를 가진 뒤 “세이프가드 권고안이 시행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2002년 미 정부가 발동한 한국산 철강제품 세이프가드 조치의 경우 우리 정부가 WTO에 제소해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으며, 미국 정부는 2003년 말 해당 조치를 철회하기도 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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