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1월 22일 ‘미스월드’ 개최국 나이지리아에서 대회 찬반을 두고 무슬림과 기독교 진영이 무력 충돌했다. 소요사태는 하루 만에 진압됐지만, 19일부터 시작된 일련의 테러와 폭동으로 약 250명이 숨지고, 2만여 명이 집을 잃고, 1,000여 명이 체포됐다. 미인대회를 둘러싼 갈등과 알력 가운데 가장 참혹한 결말로 이어진 저 사태의 도화선은 나이지리아 한 일간지의 기사였다.
나이지리아의 종교는 이슬람ㆍ기독교(성공회)가 전체 국민의 약 절반씩을 반분하고 있다. 1951년 1회 대회를 연 이래 무슬림권 주최를 가급적 기피해온 미스월드 대회 조직위원회가 나이지리아 대회를 강행하려 한 까닭도 그래서였다. 물론 직전 대회 우승자(월드 진)가 나이지리아 대표(Agbani Darego)이기도 했다. 대회는 수도 아부자에서 11월 말 열릴 예정이었다.
무슬림의 반발은 처음부터 거셌다. 우선 그 해 이슬람 성월(聖月) 라마단이 대회 일정과 겹치는 11월 5일~12월 5일이었다. 금욕과 단식의 라마단 기간 중에 ‘상스러운’ 미인대회를 연다는 것은 종교적 모독이었다. 조직위는 대회 일정을 12월 7일로 연기하고 수영복 심사를 사진 심사로 대체하는 선에서 무마하고자 했지만, 한 무슬림 보수단체 종교법원은 그 해 나이지리아 대표 아미나 라왈(Amina Lawal)에 대해 ‘외설’ 혐의로 돌로 쳐죽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험악한 분위기에 참가를 꺼린 대표들도 있었다. 노르웨이와 덴마크 프랑스 벨기에 대표 등이 불참을 선언했다. 네덜란드 대표는 종교적 억압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1월 16일 남부 라고스의 한 신문(ThisDay) 기자(Isioma Daniel)가 “무슬림은 92명의 여성이 나이지리아에서 미를 뽐내는 걸 부도덕하다고 여기지만, 예언자 모하메드도 그렇게 생각할까? 솔직히 나는 그가 그들 중 한 명을 아내로 선택하려고 할 것 같다”고 썼다. 더욱이 그는 여성이었다. 이슬람 과격단체의 테러가 시작됐고, 거기에 기독교 단체가 맞서면서 충돌은 종교분쟁으로 비화했다.
이슬람 종교지도자에 의해 ‘파트와(종교적 심판)’로 사형을 선고 받은 기자는 유럽으로 망명했고, 미스월드 대회는 런던으로 옮겨 치러졌다. 그 해 미스월드 왕관은 공교롭게도, 무슬림 국가 터키의 대표 애즈라 애킨(Azra Akin)이 썼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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