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만 힘든 것 같니’… ‘좋니’ 여성 답가의 깜짝 돌풍
미국에서 방탄소년단의 노래 ‘DNA’가 요즘 화제라면, 국내에선 가수 민서(21)의 신곡 ‘좋아’가 인기다. ‘좋아’는 지난 15일 공개된 후 21일까지 1주일 동안 멜론 등 주요 음악 사이트에서 일간 차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Mnet ‘프로듀스101’ 시즌2 출신 워너원을 비롯해 걸그룹 EXID 등 인기 그룹이 연말을 맞아 최근 잇따라 신곡을 내 음원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낯선 신인이 일군 이례적인 성과다.
‘좋아’의 인기는 가수 윤종신의 ‘좋니’ 열풍(7년 찬바람 버티며.. ‘좋니’로 부활한 윤종신ㆍ본보 8월 23일자 18면)에서 비롯됐다.
‘좋아’는 떠나 보낸 연인에 대한 남자의 그리움을 노래한 ‘좋니’를 여성의 입장에서 부른 곡이다. ‘좋니’ 속 남자가 사랑했던 여자가 옛 연인의 노래를 듣고 보낸 답가인 셈이다. ‘잘 지낸다고 전해 들었어’(‘좋니’)라는 옛 남자친구에게 그녀는 ‘잘 지낸다고 전해 들었지? 내겐 정말 참 좋은 사람 만나 잘 지내고 있어’(‘좋아’)라고 답한다.
곡의 백미는 후반부 가사다. ‘좋아’에서 그녀는 ‘억울한가 봐 너만 힘든 것 같니’라며 ‘어쩜 넌 그대로니. 몰래 흘린 눈물 아니 제발 유난 좀 떨지 마’라고 노래한다. ‘좋니’에서 자신만 힘든 줄 아는 옛 남자친구를 향한 일갈은 여성 청취자들의 공감을 사며 곡의 인기로 이어졌다.
“세상 슬픔 혼자 다 짊어진 것 같은 ‘좋니’를 듣고 속 터졌거든요, 하하하.” 최근 서울 중구 세종로 한국일보를 찾은 민서는 “빨리 여자 입장에서 부른 노래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윤종신 선생님이 ‘좋아’ 가사를 보여줬을 때 ‘그래 이거야’란 생각이 들 정도로 공감이 갔다”며 웃었다.
윤종신은 ‘좋니’에 이어 ‘좋아’의 노랫말을 직접 써 같은 소속사에서 정식 데뷔를 한창 준비하고 있는 민서에 줬다. 윤종신은 민서의 목소리에 애조가 있다고 봤다. 민서가 톤만 잘 조절하면 덤덤하게 곡에 담긴 슬픔을 표현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걸그룹 멤버로 데뷔 제안 모두 거절”
민서는 2015년 Mnet ‘슈퍼스타K7’으로 처음 얼굴을 알렸다. 방송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가수 백지영에게서 “다듬어지지 않은 순수한 목소리”란 평을 들으며 톱10에 선발, 두각을 보였다. 170㎝의 큰 키에 풋풋한 외모로 시청자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민서는 방송이 끝난 후 그를 걸그룹 멤버로 데뷔시키려는 가요기획사의 러브콜을 모두 정중하게 고사했다. 민서는 “여기저기서 걸그룹 메인 보컬 해줬으면 좋겠다는 제의를 받았지만, 여성 솔로 가수로 활동하고 싶었다”고, 윤종신 소속사인 미스틱엔터테인먼트에 둥지를 튼 이유를 들려줬다. 민서는 “‘프로듀스101’ 출연 제의도 받았지만” 나가지 않았다. 애초 민서는 고등학생 때 한 가요기획사에서 걸그룹 데뷔를 준비했다. 연습생으로 지내던 민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제 옷이 아니라는 생각에 회사를 나왔다.
민서는 내달 정식 데뷔 곡을 발표한다. 지난해 ‘월간 윤종신’ 10월호에서 ‘처음’을, 같은 해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 OST에 실린 ‘임이 오는 소리’를 불렀지만, 자신의 음악색을 오롯이 담아 내는 곡은 처음이다. 이 노래를 내기까지 ‘슈퍼스타K7’ 이후 2년이 걸렸다. 민서는 “목소리도 변했고, 발성 등 소리를 다듬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전엔 ‘소리를 먹는다’는 지적을 받을 정도로 발성이 안 좋았어요. 전형적인 입시 보컬 톤이란 얘기도 들었죠. ‘슈퍼스타K7’ 끝나고 몇 개월 뒤 다시 프로그램 영상을 보는 데 제 노래를 도저히 못 들어주겠는거예요. 그래서 계속 노래 연습하고 녹음하면서 제 창법의 틀을 깨려고 노력했어요.”

정미조ㆍ양희은 꿈꾸는 ‘슈스케 소녀’
‘슈퍼스타K7’에서 짧은 커트 머리에 빵모자를 쓰고 나와 소년 같았던 민서는 2년 새 부쩍 성숙해졌다. 말투는 여전히 털털했지만, 속은 꽉 찼다. 민서는 중학교 3학년이 되던 6년 전,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세가 기울었지만, 불평 없이 학업과 카페 아르바이트 등을 병행하며 가수 데뷔를 준비했다. 민서는 흔한 아이돌 K팝 대신 정미조와 양희은, 이소라 등의 노래를 들으며 서정을 키웠다.
“제 바람은 정미조, 양희은 선생님처럼 지긋이 나이 들어서도 노래를 하는 거예요. 선생님들처럼 인생이 담긴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물론 많이 배우고 시간도 흘러야겠지만, 소리로 사람들을 울컥할 수 있게 하는 가수가 되는 게 꿈이에요.”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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