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54개 미군기지를 반환 받는 과정에서 단 한 차례도 미군 측에 환경오염 책임을 묻지 못한 것은 미군에 유리한 협약, 그리고 정부의 의지 부족이 합쳐진 결과물이다.
주한미군 기지 반환 협상은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 산하의 시설분과위원회의 반환 절차 개시 ▦환경분과위원회 협의 ▦SOFA 합동위원회의 최종 승인 순으로 진행된다. 환경분과위원회 논의 기준은 한미간 특별양해각서나 공동환경평가절차(JEAP) 등 다른 협약 사항을 통해 제어된다.
근본적으로 미군기지의 오염에 대한 정부의 상시 제재 및 접근권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채영근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독일의 경우 미군 시설에 대해 독일의 (환경) 법 조항을 적용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우리가 참고해야 한다”며 “우리 환경법에 대한 적용을 명시하고 위반 의심이 되는 오염 사고가 있을 경우 우리 공무원이 접근에 협조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협약 등을 토대로 해도 정부가 적극 나서면 달라질 수 있지만 크게 부족하다는 비판도 많다. SOFA 제4조는 ‘미군이 시설과 구역을 우리 정부에 반환할 때, 제공되었던 당시로 원상 복구하거나 보상할 의무가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2001년 우리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이 건물과 공작물 등에 대한 복구 의무 면제일 뿐 오염과 정화에 대한 규정은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여전히 미군 측은 협상 테이블에서 이 조항을 오염 정화 면책 근거로 제시하고 우리 정부는 무기력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미간 공동환경평가절차 때도 마찬가지이다. 채 교수는 “부산 하야리아 부대의 경우, 오염 면적 조사 결과가 반환 이후 지자체 조사에서 그렇게 크게 달라진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우리 정부 측이 조사를 게을리 했거나 심각한 오염을 알면서도 은폐하거나 둘 중 하나로 밖에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미군기지 환경 오염 조사에 참여하고도 ‘미군 측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무조건 정보 공개를 거부하는 태도는 법원에서 수 차례 지적당했다. 환경부는 용산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1차 조사결과 공개를 거부했다가, 시민단체가 낸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지만 이후 또 2ㆍ3차 조사결과 공개를 거부했다. 하주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미군문제연구위원장은 “SOFA에는 정보 공개 금지 조항이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보공개법이 한미 합의보다 상위에 있다”면서 “환경부가 적극적인 공개 의사를 가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채 교수는 “불합리한 SOFA 개정까지 당장 밀어붙이기는 힘들겠지만 정부가 적절히 오염 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그 여론을 발판 삼아 협상에 임할 필요가 있다”며 “용산 기지뿐 아니라 평택 미군기지 역시 언젠가는 우리가 돌려 받을 땅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장기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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