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끝나기도 전에 검찰 고발
절차나 내용에 아주 문제 많아”
“김제동ㆍ윤도현 전 소속사 세무조사도
조사권 남용 의심”
국세청의 적폐청산 기구인 ‘국세행정 개혁 태스크포스(TF)’가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 사건의 발화점이 된 태광실업 세무조사에 대해 “중대한 조사권 남용이 의심된다”고 판단했다. 당시 국세청장이 조사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고 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검찰 고발이 이뤄지는 등 ‘정치적 표적조사’ 의혹이 짙다는 게 세무조사 9년 만에 나온 TF의 결론이다.
국세청은 20일 ‘국세행정 개혁 TF 중간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 8월 민관 합동으로 출범한 TF는 과거 정치적 논란이 불거진 세무조사 62건에 대해 점검해왔다. 이날 중간 보고서는 이중 ‘중대한 조사권 남용이 의심되는’ 5건에 대한 점검 결과다.
먼저 TF는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박연차 전 회장이 소유한 태광실업ㆍ정산개발 세무조사에 대해 “조사권 남용이 의심되는 객관적 정황이 다수 발견됐다”고 밝혔다. 2008년 7월 국세청은 태광실업 세무조사에 착수, 교차조사(지방기업과 관할 세무공무원간 유착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타 지역 지방청이 실시하는 조사) 명목으로 부산에 본사를 둔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국세청의 ‘중앙수사부’ 격인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에 맡겼다. 국세청은 또 세무조사가 종료되기도 전인 같은 해 11월 검찰에 태광실업ㆍ정산개발을 고발하는 등 사건을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이에 따라 검찰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시작된 뒤 이듬해 5월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국세청 안팎에선 이명박 정부가 광우병 촛불시위에 따른 정치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태광실업을 희생양 삼아 정략적인 세무조사를 벌인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은 최근 저서 ‘국세청은 정의로운가’에서 “2008년 여름 한상률 청장이 불러 ‘노 대통령 자금줄인 박연차의 베트남 신발공장을 까야 한다’며 베트남 국세청과의 협조를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안 전 청장은 “태광실업 세무조사는 순수한 세무조사라기보다는 노 전 대통령을 향한 표적조사였다”며 “통상 세무조사는 기업이 이익을 적게 신고해 세금을 적게 내는 것을 조사하지만, 당시 한 청장은 세무조사의 본 목적과 달리 돈의 ‘용처’를 찾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세청 TF는 ▦교차조사 신청부터 조사 착수까지 절차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이뤄진 데다가 ▦세무조사가 종료되기도 전에 검찰에 고발 조치한 것도 통상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 TF 위원은 “한 전 청장이 조사업무와 관계 없는 직원까지 투입하려 하는 등 과도하게 개입한 정황도 있다”며 “절차나 내용에서 아주 문제가 많다”고 강조했다. TF는 당시 국세청의 이 같은 행위가 국세기본법상 ‘세무조사권 남용’에 해당된다고 보고 있다.
TF는 이에 대한 후속 조치로 “공소시효 등 법적 요건을 검토해 검찰수사 의뢰 등 적법 조치할 것”을 권고했다. 다만 국세기본법에는 조사권 남용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어 법리적으로 관련자 형사 처벌이 가능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국세청 관계자는 “TF의 권고를 검토해 검찰 수사 의뢰나 관련자 내부 징계 등을 결정할 것”이라며 “징계시효, 공소시효 등 법리적으로 상당히 복잡해 외부 법률 자문을 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TF는 2011년 6월 이명박 정부에서 촛불집회를 주동해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김제동ㆍ윤도현씨의 전 소속사 A기업에 대한 세무조사에 대해서도 “조사권 남용이 의심된다”고 결론지었다. 또 국정농단 사태 주역 최순실 씨의 단골 성형의인 김영재 김영재의원 원장의 중동사업 진출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국세청이 2015년 4월 이현주 대원어드바이저리 대표 일가의 기업 2㖛에 ‘보복성 세무조사’를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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