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쿠데타로 사실상 권좌에서 쫓겨난 로버트 무가베(93) 짐바브웨 대통령이 조건부 퇴진에 합의했다고 20일(현지시간) CNN이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군부가 자신과 부인 그레이스 무가베 여사에 대한 완전한 면책과 퇴임 후 사유재산 보전을 약속할 경우,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CNN은 “무가베 대통령의 요구에 군부가 사실상 수용 의사를 밝혔고, 관련 문건 초안이 작성돼 있다”고 전했다.
앞서 전날 밤 무가베 대통령은 대국민 TV 연설을 통해 “장군들이 제기한 문제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서도 정작 사임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몇 주 내로 전당 대회가 열릴 예정인데, 그 대회를 직접 주재하겠다”며 당장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번 연설을 통해 자진 사퇴 발표가 나올 것이란 관측이 쏟아진 터라, 이 같은 무가베 대통령의 발언은 짐바브웨 안팎으로 충격을 줬다. 연설 직전인 같은 날 오후 집권 여당인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동맹-애국전선(ZANU-PF)’이 무가베 대통령을 제명한 데 이어, 외신들도 그가 곧 사임 발표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소식통은 “무가베가 TV 연설을 하도록 한 군 장성들의 의도는 군의 조치들이 헌법적이고 무가베가 그것들을 수용했음을 선언하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이터 통신은 ZANU-PF당 관계자의 말을 인용, “군 장성들이 있는 자리에서 사임을 발표할 경우 안 좋게 비춰지고,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며 사임에 합의했으면서도 TV연설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또 다른 정당 관계자도 “무가베 대통령의 이번 TV 연설은 군사 행동을 건전하게 보이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무가베 대통령이 여야 정당이 통보한 자진 사임 시한을 넘김에 따라 의회는 탄핵 절차에 본격 돌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ZANU-PF당은 앞서 무가베 대통령에게 통보한 시한인 20일 낮 12시가 지나자 "무가베는 불안정의 근원이자 법치주의를 존경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며 "오늘 탄핵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주요 야당인 민주변화동맹(MDC)도 탄핵 지지 입장을 표명했다. 의회 정족수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탄핵은 가능하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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