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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화 “국정농단 사태를 없던 일처럼 생각하는 친박계에 절망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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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화 “국정농단 사태를 없던 일처럼 생각하는 친박계에 절망감”

입력
2017.11.20 15:04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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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주변 참모와 소통하고

쓴소리 충신을 곁에 뒀더라면…

‘유승민 사태’ 朴정권 실패 상징”

19대 국회 상황 아쉬움 드러내

정의화 전 국회의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의화 전 국회의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이른바 ‘유승민 사태’를 정권 실패의 상징적 사건으로 거론했다. 박 전 대통령은 임기 3년 차인 2015년 국회법 개정안 여야 합의를 빌미로 유승민 당시 여당 원내대표를 끌어내렸다.

정 전 의장은 최근 출간한 회고록 ‘정의화의 아름다운 복수’에서 “돌이켜 보면, 대통령의 무리한 거부권 행사가 나비효과처럼 국민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고 총선 대패로 이어져 급기야 탄핵에까지 이르게 하지 않았을까 한다”고 밝혔다. “만약 대통령이 주변 참모들과 소통을 과감히 하고 포용적인 리더십을 보여줬더라면, 본인의 말을 잘 따르는 참모가 아니라 쓴소리 하는 참모도 곁에 두었더라면”이라는 탄식과 함께다.

정 전 의장은 그러면서 “유승민 사태는, 쓴소리 하는 충신을 못마땅히 생각하고 멀리하면 잘못을 바로 잡아줄 참모가 한 명도 남지 않아 결국 실패한 왕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과거 역사를 다시 보여준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전 대통령 재임 때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의 행태도 ‘거수기’라고 비판했다. 정 전 의장은 ‘국회법 개정안 파동’ 당시를 떠올리며 “박 대통령의 한마디에 스스로 찬성해 통과시켰던 법안을 결국 폐기시키는 새누리당은 거수기였다”며 “새누리당 출신으로서 큰 비애를 느꼈다”고 회고했다. 또 “스스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새누리당은 그때부터 안하무인이었고 대통령과 청와대의 눈치에는 천재성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꼬집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호가호위 했던 친박계에도 일침을 놨다. 정 전 의장은 “박 대통령의 몰락을 보면서 무조건적으로 추종했던 완장 찬 친박들의 거취를 주목했으나 절망감을 느낄 뿐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정계 은퇴나 탈당은커녕 없던 일처럼 숨죽이고 있는 그들은, 국민이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고민이나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고 지적했다.

의장으로서 국회법에 명시된 직권상정 요건 준수와 관련해 엇갈린 결단을 한 배경도 설명했다. 당시 ‘박근혜 청와대’가 밀어붙인 이른바 ‘경제활성화법’은 거부하면서 야당이 거세게 반대한 ‘테러방지법’은 직권상정한 연유다. 테러방지법 상정으로 2016년 2월 야당은 8박 9일간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로 항의한 바 있다.

정 전 의장은 경제활성화법 직권상정 거부와 관련해선 천재지변,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 의장이 교섭단체 대표와 합의하는 경우로 한정한 국회법을 지킨 것임 거듭 강조했다. 정 전 의장은 “’정의화’를 ‘불의화’로 바꾸지 않는 한 할 수 없는 일이었다”며 “삼권분립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국회의장을 겁박하는 여당과 이를 조종하는 청와대의 작태가 한국 정치의 부끄러운 민낯이고 후진적인 모습인 것”이라고 탄식했다.

반면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을 두고는 “지금도 당시의 결정에 후회는 없다”고 밝혔다. 정 전 의장은 “20년 간 정치를 하면서 가장 많은 비난을 받았던 일”이라면서도 “테러방지법은 직권상정의 요건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 근거로는 ▲북한의 테러 위협 ▲국제적 테러 위협 ▲법률 자문 결과 ▲선제적ㆍ예방적 조치의 필요성을 들었다. 정 전 의장은 “이처럼 다각도로 검토한 끝에 국민 안전 비상상황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당시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정 전 의장은 “이것도 우리의 민주주의”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과거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지만 이제 민주주의는 토론을 통해 자란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평했다.

신경외과 출신인 정 전 의장은 “국회의장 임기 2년을 되돌아보며 내 생애 가장 긴 수술을 마쳤다고 자평했다. 이어 “집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가지 않고 여의도에 사무실을 낸 것도 수술 후 환자의 회복 상태를 지켜보기 위해”라고 밝혔다. 정 전 의장은 자신의 의정생활을 회고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는 생물’, 김종필 전 총리는 ‘정치는 허업’이라고 했지만 감히 나는 ‘정치는 생명’이라고 하고 싶다”고도 했다. “생물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살리는 능력을 발휘해야 하고 그렇게 한다면 어떻게 허업이 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회고록 제목인 ‘아름다운 복수’는 모친의 가르침에서 따왔다. 정 전 의장은 재임 시절 일본군 성노예 문제의 해결 의지를 밝히며 이 표현을 자주 쓰곤 했다. 정 전 의장은 회고록에서 재임 중 ‘나눔의 집’을 방문했을 때 일을 들며 “나라 잃은 비극은 우리 젊은 여성들이 일본군 성노예로 내몰리게 해 영혼을 짓밟히고 육신이 피폐해지게 만들었다”며 “당시 무슨 말로 위로를 드려야 할지 할 말을 찾지 못하다가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려 이렇게 말했다”고 소개했다. “우리나라를 강하고 좋은 나라로 만들어 일본에 아름다운 복수를 해 한을 풀어드리겠습니다.” 정 전 의장은 “아름다운 복수는 어머니의 지혜 중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이라고 설명했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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