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일랜드 독립투쟁의 산증인 게리 애덤스(69) 신페인당 당수가 2선 후퇴를 선언했다. 30년 넘게 맡았던 당수직을 내려놓고 내년 예정된 총선 불출마 구상도 밝혔다. 폭력ㆍ평화가 공존한 혼돈의 시대를 대변하는 그의 퇴진으로 아일랜드 통일운동은 의회 정치 등을 통한 보다 합법적 절차로 방향을 전환할 가능성이 커졌다.
애덤스는 18일(현지시간)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 열린 신페인당 연례 당대회에 참석해 “리더십은 변화의 시기를 아는 것이고, 지금이 바로 그때”라며 당수직 사임을 공식 발표했다. 또 내년 5,6월 치러지는 총선에도 출마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1983년 당수에 취임한 이래 34년간 줄곧 신페인당을 이끌어 왔다.
애덤스는 ‘북아일랜드 분쟁사’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영국은 1921년 아일랜드의 독립을 승인하되, 북쪽 지역은 자국 영토로 남겨 뒀다. 그러나 갈수록 북아일랜드 소수 구교도(가톨릭)를 향한 영국 정부의 차별 정책이 심해지자 독립을 추구하는 구교 중심의 아일랜드공화국군(IRA)과 영연방 잔류를 원하는 신교 세력간 대립이 확산됐다. 신페인(아일랜드어로 ‘우리 스스로’라는 뜻)당은 IRA의 정치조직이다. 급기야 1972년 북아일랜드 런던데리에서 영국군이 구교도 시위대에 발포해 14명이 숨진 ‘피의 일요일’ 사건이 발생하면서 1994년 IRA가 휴전을 선언할 때까지 각종 폭탄 테러와 무장 공격이 끊이지 않았다. 이 기간 IRA 테러에 희생된 사람은 3,600여명에 달한다. 애덤스는 1998년 4월 당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구성 등을 골자로 한 ‘성금요일 협정’을 맺어 수십년에 걸친 유혈 분쟁을 종식시켰다.
과격 무장조직과 연계돼 있으면서도 평화체제를 이끌어낸 이력 탓에 애덤스에게는 ‘폭력과 평화 사이에서 줄타기한 인물(BBC)’ 등 논쟁적 평가가 따라 다닌다. 영국 정부는 그의 일관된 부인에도 IRA가 저지른 상당수 테러 배후에 애덤스가 있다고 본다. 2014년엔 북아일랜드 경찰이 1972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발생한 진 맥컨빌 납치ㆍ살해 혐의로 애덤스를 체포하기도 했다. IRA는 앞서 영국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맥컨빌을 살해한 사실을 시인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1980년대 영국 방송에 애덤스의 목소리가 나가는 것조차 금지됐을 정도”라고 전했다.
애덤스의 당수직 사퇴는 신페인당의 정치력을 강화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북아일랜드는 성금요일 협정에 근거해 연방주의 정당(민주연합당ㆍDUP)과 아일랜드와 통일을 원하는 민족주의 정당(신페인당)이 공동 정권을 꾸리게 돼 있다. 하지만 올해 3월 실시된 총선에서 나란히 1,2위를 차지한 DUP와 신페인당은 의견 차이로 아직 정부를 꾸리지 못하고 있다. 신페인당은 새 지도부가 출범하면 내심 소수 야당인 아일랜드 신페인당과 통합해 덩치를 키우고 싶어 한다. 차기 당수로는 미셸 오닐(40) 대표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BBC는 “신페인당의 미래가 어떻든 애덤스 퇴진이 역사적 변화인 것만큼은 분명하다”고 평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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