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립지 지역 치솟다가 푹 꺼져
지진 후 건축 시 지반강화 지침
2011년 3월11일 일본 도호쿠(東北)대지진 당시 광범위한 지역에서 도로가 춤추듯 일렁이고 느닷없이 물을 뿜어댔다. 주변 땅은 주저앉으면서 솟아오른 건물들이 흉물처럼 남게 됐다. ‘액상화 현상’은 간토(關東), 도호쿠 지방에서만 무려 9,680여 지점에서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반이 물렁물렁해지는 액상화 범위는 지진 발생 한달 뒤 조사에서만 수백km에 이른 것으로 밝혀졌다. 부서지지도 않은 건물 전체가 기울거나 가라앉고 상하수도와 가스배관이 파괴되는 등 도시기능이 마비된 것이다. 지반이 1.2m나 가라앉은 사례도 있었다.
간토 지방의 경우 원래부터 연약한 지반이 적지 않은데다 도쿄만을 따라 매립지가 많았던 점도 피해를 키웠다. 도쿄(東京) 동쪽 치바(千葉)현 우라야스(浦安)시가 대표적인데, 건물 8,700채가 피해를 입었을 만큼 상황은 심각했다. 이곳은 도시 4분의 3이 바다를 메운 매립지인데 맨홀이 땅 위로 1m 이상 치솟는가 하면, 전신주는 한쪽으로 기울어졌고 전깃줄은 위험하게 널브러졌다. 치바현립 미나미 고교는 상하수도관이 깨져 수도와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지진 발생 3주일 이상 운동장에서 물이 빠지지 않아 결국 학교를 폐쇄하고 10km 떨어진 한 폐교로 이사를 가야 했다.
이뿐 아니다. 보도블록이 좌우로 흔들리는 대지진으로 지층이 뒤틀리면서 지하수가 급격하게 분출됐고, 물이 빠져나간 곳은 땅이 움푹 꺼졌다. 이 때문에 전철역 앞 엘리베이터 타워가 1m가량 공중으로 떠있는 광경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화장실도 쓰지 못하니 텃밭에 구덩이를 파 용변을 해결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인근에 있는 유명 관광지 도쿄 디즈니랜드는 액상화로 물바다가 됐다.
일본 사례에 비춰 볼 때 액상화로 지역 전체가 살 수 없는 땅이 되면 사후 대책이 마땅치 않다. 정부 지원금도 한계가 있고 액상화 지대라는 소문이 나면 부동산 가격이 떨어져 주민들은 오히려 쉬쉬하는 분위기다. 지진 1년 뒤 수도권인 치바현의 전출자 숫자는 53년 만에 전입자수를 추월하기도 했다.
다만 대지진 후 일본에선 빌딩이나 아파트를 지을 때 지하에 박아 넣는 지지대가 단단한 암반층까지 뿌리내리도록 건축 지침이 강화됐다. 사전에 자갈이나 시멘트로 매립지 지반을 강화하는 공법도 실시 중이다. 방재 당국은 무엇보다 어느 지역이 액상화 위험지대인지 파악하는 데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도쿄도는 액상화 대피지도를 구축한 뒤 강진에 취약한 지역들을 색깔별로 구분해 주의를 환기하고 있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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