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중국판 ‘블랙 프라이데이’인 광군제(光棍節ㆍ독신자의 날) 행사가 진행됐다. 당일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 그룹의 매출액은 우리 돈으로 28조 3,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국내 전자상거래 연간 거래 규모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다. 광군제의 성공은 알리바바의 공이 크지만 실제로는 제품의 생산(가맹점), 판매(알리바바), 구매(소비자), 금융서비스(카드사)가 상호 연계돼 유기적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국의 광군제는 상생을 통한 성장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국내 신용카드 지급결제 시장도 연간 600조원 규모로 민간소비지출의 71%를 담당할 정도로 커졌다. 가맹점은 좋은 제품을 만들고 카드사는 신용공여 및 지급결제 편의성 제공을 통해 실질적인 가맹점 매출 증가에 기여해 왔다. 지급결제부문의 투명성을 높여 세원 확보 및 지하경제 축소 등의 긍정적 역할도 했다. 이는 곧 상생을 통해 국가의 부(富)를 창출하는 일이다.
카드 산업은 꾸준히 성장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했다. 카드 산업에는 카드 모집인, 콜센터 직원, 여신 상담원, 카드 집배원 등 카드사 소속 근로자가 3만명에 이르고 카드 모집인 수도 7만 5,000명에 달한다. 또 카드 승인 및 매입 대행을 맡는 결제대행업체(VAN) 및 밴대리점의 고용 인력도 2만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이외 간편결제 서비스 업체와 같이 간접적으로 연계된 고용 인력까지 고려하면 훨씬 더 많은 일자리가 카드 산업 내에서 창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국내 지급결제시장은 상생을 통한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비용절감을 통한 생존경쟁에 나서고 있는 모양새다. 카드사는 작년과 올해 시행된 가맹점 수수료 인하와 우대 가맹점 범위 확대 정책으로 연간 1조원 가까운 가맹점 수수료 수익이 감소했다. 최근 3분기 당기 순이익은 카드사별로 최대 40% 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해 가맹점, 카드사, 밴(VAN)사, 전자결제대행사(PG사)는 비용을 어떻게 절감할 지에 대한 고민에 빠져있다. 카드사는 이미 1년 전부터 희망 퇴직 등을 실시했고 카드 모집인 수도 감소하고 있다. 밴사와 밴대리점도 현재 구조조정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카드사들은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IC단말기 전환 지원을 위한 기금 마련과 신용카드 사회공헌 재단 출범을 통해 영세 가맹점과 취약계층을 돕는 데 적극 나서고 있다. 영세ㆍ중소 가맹점의 가맹점 수수료 인하에도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카드사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사실상 넘어서고 있다. 이미 가맹점 수수료가 상당히 인하된 상황에서 내년에 또 추가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시사하고 있고 비용 부담에 대한 결론 없이 카드사를 통한 부가세 대리 징수 제도도 추진될 상황이다.
카드산업의 이 같은 지속적 경영환경 악화는 12만 5,000명으로 추정되는 카드 산업 종사자의 고용 불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특히 생계형으로 근무하고 있는 중소형 회사의 카드 모집인, 콜센터 직원, 여신 상담원, 카드 집배원, 가맹점 모집인이 가장 먼저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비용 감축 경쟁이 심화하면 대형 지급결제 서비스 업체보다는 중소형 회사의 생존이 어려워지고 이들과 연계된 취약계층의 고용이 가장 빨리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광군제 이후 알리바바 그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대중은 알리바바 그룹이 가맹점으로부터 받는 수수료와 광고비용보다는 실질적인 매출 향상에 관심이 더 높다. 이는 가맹점에 최고 미덕은 매출 증대이기 때문이다. 지급 결제 서비스 생태계 내의 일방에게 희생을 강요하기보다는 상생을 통한 가맹점 매출 향상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김덕수 여신금융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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