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장량동 800여세대 규모
내진 설계 1등급… 부실시공 의혹
경북 포항시 북구 장량동에 포항지역 유명건설사가 지은 800여세대 규모의 T아파트는 15일 포항 지진 후 층마다 외벽에 X자로 선명한 균열이 생겼다. 내진설계 1등급에 준공된 지 3년밖에 안된 새 아파트지만 20층 가량의 건물 전체 금이 나 쫙 갈라진 흔적이 단지 내 9개 동중 5개 동에서 발견됐다. 내부는 더 심각하다. 1층 현관 입구마다 대리석 타일이 성한 곳이 없다. 벽 균열은 물론이고 엘리베이터가 뒤틀려 지금도 계단을 이용해야 하는 라인도 있다. 각 세대 현관문은 물론 계단, 비상구 등 벽체 곳곳에 금이 가 있다.
17일 오후 7시 T아파트 다목적룸에서 시공사 임원까지 참여해 열린 지진피해 긴급 대책회의에는 입주민들의 분노 섞인 고성이 터져 나왔다. 아파트 건설사는 “아파트가 이번 지진 진앙에서 가까이 위치하고 파형을 단정지을 수 없지만 지진파가 당 아파트에 직접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한다”며 “내진설계는 돼 있으나 비내력벽 후면부의 완충작용으로 균열이 생겼고 오히려 균열이 없었다면 내력벽에 영향을 끼쳐 건물이 부러질 수 있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아파트 주민들은 회사측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으려 하지 않는다. T아파트 주변에 아파트 수 천 세대가 자리잡고 있지만 외부 벽체에 심한 균열이 생긴 곳은 이 곳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균열이 심한 5개 동은 500여 세대 가운데 80% 정도가 불안함에 집을 비운 것으로 전해졌다.
급기야 주민들은 건축전문가를 기술고문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까지 꾸려 대책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주민들은 포항시에는 이런 피해 상황을 신고하지 않을뿐더러 외부에도 일절 알리지 않고 있다. 지진으로 파손된 건물 상태가 알려지면 가뜩이나 하락세인 집값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 속앓이만 하고 있다. 10월말 현재 포항지역 미분양 아파트 수는 2,239세대로, 이미 국토교통부의 미분양관리지역에 포함됐을 정도다.
T아파트 주민 권모(36)씨는 “매일 잠만 자고 나오는데 무너질까 겁이나 밤에도 수십 번 깬다”며 “주민들이 불안해도 집값 때문에 어디 가서 속 시원히 말도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포항지역 한 토목전문가는 “지은 지 3년 된 아파트가 지진으로 외부 벽체에 이 정도의 균열이 발생한 건 처음 본다”며 “시공사가 어떤 설명을 내놔도 납득할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T아파트 외에도 진앙지와 가까운 포항 북구 장량동, 두호동, 우창동 일대 주민들은 승강기가 뒤틀려 사용할 수 없거나 내부 벽체 균열 등으로 불안에 떨면서도 터놓고 말 못 하고 있다.
포항 북구 우창동의 한 아파트 주민 김모(43)씨는 “완공 4년 밖에 안된 아파트인데 엘리베이터 2대 중 한 대는 많이 뒤틀려 수리하는데 상당시간 걸린다고 들었다”며 “벌써 주민들 사이 이제 집 팔기는 글렀다는 말이 나온다”고 전했다.
포항=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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