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에 지반 약해져 땅속 물 분출 추정
흔적 100여곳… 확인 땐 국내 첫 사례
기상청, 판단 유보 속 “정밀조사”


15일 규모 5.4 포항 지진 발생 당시 진앙인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망천리에서 10㎞ 가량 떨어진 남구 해도동 포항운하공원을 거닐던 주민들은 보도블록이 25m나 갈라지면서 모래, 흙과 범벅이 돼 솟구치는 물기둥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주민 박모(45)씨는 “공원을 걷고 있는데 땅이 갑자기 흔들린 후 흙탕물이 한참 동안 흘러나와 모두 아우성을 쳤다”며 “일본 도호쿠 대지진 당시 TV에서 보던 액상화 현상과 너무도 흡사해 무서웠다“고 말했다.
손문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팀도 19일 “진앙 주변 2,3㎞ 반경에서 흙탕물이 분출된 흔적 100여곳이 발견되는 등 액상화 흔적을 확인했다”며 밝혔다.
포항이 액상화(液狀化) 공포로 떨고 있다. 연약 지반의 액체가 한 곳으로 쏠려 분출하는 액상화 현상이 포항 전역에서 넓게 확인되면서 건물 안전에 대한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지하수와 토양 모래층이 뒤섞여 땅이 물렁물렁해지는 액상화 현상은 지반 약화로 인한 건물 붕괴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기상청은 이날 “아직 국내에 공식적으로 액상화 현상이 보고된 적 없다”며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물이 흙, 모래와 함께 솟아오른 지역의 땅을 직접 시추해 액상화 여부에 대한 정밀조사에 나선 뒤 진단을 내리겠다는 입장이다. 액상화가 확인되면 국내 첫 사례가 된다.
하지만 19일에도 진앙인 망천리 곳곳에서 액상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 달 이상 비가 내리지 않아 바짝 말라있던 논 곳곳이 흥건하게 젖어 있는 모습을 육안으로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물이 솟아오른 작은 분화구도 눈에 띄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지진 직후 논에는 어른 무릎 높이만큼 물이 차 올랐다. 현재 수위가 많이 내려왔지만 인근 마른 논과는 멀리서도 확연히 구분될 정도다.
액상화는 흥해읍에 집중됐으나 남구 송도동과 칠포해수욕장 등 포항 전역에서 관측되고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현장조사팀이 이날까지 반경 5.5㎞ 안에서 확인한 모래와 진흙 분출구만 30여개에 이르고 있다. 포항의 액상화는 2011년 3월 도호쿠 대지진 당시 도쿄 인근 우라야스 지역에서 발생한 현상과 유사하다는 지적이다.
손문 교수는 “포항 일대는 3,000만년 전까지 바닷물에 잠겨 있던 지역이어서 지진이 나면 땅이 순간적으로 물처럼 흔들리는 액상화 현상과 피해가 커진다”며 “여진이 계속 발생하고 있어 액상화에 대한 지반 안전 여부를 꼼꼼하게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항=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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