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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마음의 사이렌

입력
2017.11.19 10:5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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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다녀온 사람이면 누구나 그들의 국민성을 화제 삼는다. 나라 전체가 낯선 상대방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실례로 여기는 분위기 때문이다. 과연 내가 경험한 일본도 그랬다. 식당과 숙소에서도 하나같이 친절하고, 거리에 지나는 사람들은 옷깃만 스쳐도 실례했다는 말을 연발한다. 화장실을 이용할 때도 볼일을 마치고 나온 사람이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 꼭 죄송하다는 말을 붙인다.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나중엔 모두가 그런 말을 붙이니 이를 보편적인 국민성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일정 부분의 실례는 서로 너그럽게 이해하는 우리와 대비되기에 이렇게 많은 이가 화제 삼는 것이리라.

이런 분위기에서 눈에 띄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바로 구급차와 경찰차가 길거리를 지날 때다. 이들은 유난히 조용한 일본의 거리를, 누구도 시끄럽다고 느낄 만큼의 엄청난 굉음을 내면서 질주한다. 구급차는 말할 것도 없고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차도 굉음을 낸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행인들도 이 굉음에 깜짝 놀라 소리가 난 곳을 지켜본다. 그런데 여긴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사회가 아니던가. 하지만 그에 앞서, 여긴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시 되는 나라다. 그래서 이 굉음은 누군가의 권리이기에 타인에 대한 폐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사회적 함의로 보였다.

우리나라도 구급차와 소방차는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를 내며 달린다. 규정도 다르지 않다. 소방차와 구급차는 일정 데시벨 사이의 사이렌을 자유롭게 울리며 달릴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고충은 바로 민원이다. 우리는 구급차가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일을 종종 보지만, 조용히 가는 구급차도 많이 본다. 계속 사이렌을 켜놓고 달리면 꼭 민원이 들어와 해결하느라 애를 먹기에, 꼭 필요한 때만 사이렌을 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구급차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달린다면, 그 차는 정말 위급한 차라고 봐도 된다.

반면 늘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것은 오히려 사설 구급차다. 이들도 급한 환자를 태우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민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설 구급차는 사이렌이나 교통위반에서 훨씬 더 자유롭다. 응급실로 지축을 흔드는 소리와 함께 오는 구급차는 119에서 온 심정지거나 사설 구급차라는 말까지 있다.

그래도 인식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 구급차에게 길을 터주는 캠페인도 모두의 공감 하에 자리 잡아가고 있고, 보통 사람들은 사이렌이 시끄러워도 이해한다. 하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소음 때문에 자신들의 아파트 단지를 구급차가 지나지 못하게 막아놓거나 소리를 줄여달라는 플래카드를 건 일이 종종 기사화되며, 인명구조 헬기 때문에 등산객의 김밥에 모래가 들어갔다고 민원을 넣기도 한다. 그중 압권은 2015년 1월 의정부 아파트 화재에서 상공에 뜬 인명구조헬기였다. 주민들은 헬기 프로펠러에서 나오는 바람이 불을 키워 재산피해가 커졌다고 민원을 넣었다. 당시 4명이 죽었고, 120명이 다쳤다. 목숨을 걸고 검은 연기 사이로 생존자를 찾던 대원들과 옥상에 피신한 생존자가 있었다. 그럼에도 출동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인가. 나는 그 기사를 보고 마음이 구겨지는 슬픔을 느꼈다.

나는 일본의 누군가도 시끄러운 사이렌에 대해 민원을 넣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소심한 국민성과 당당하고 커다란 사이렌의 간극에서, 안전이 제일로 중시되는 사회에 대한 부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큰 축은 이미 그렇게 기울고 있다. 다만 어디서나, 아직 기울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목소리를 어디까지 받아들여 올바른 접점을 찾거나 혹은 바꾸어 나갈지는 우리 사회와 인식의 몫이다. 개인적으로, 안전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참거나 희생하는 세상을 바라본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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