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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쟁지역] 레바논 총리 사임, 사우디의 진짜 목표는 헤즈볼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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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쟁지역] 레바논 총리 사임, 사우디의 진짜 목표는 헤즈볼라였다

입력
2017.11.17 19: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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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 경쟁 벌이는 수니파 사우디

親이란 시아파 헤즈볼라를 겨냥

헤즈볼라의 종파 초월 이미지

시리아 내전 아사드 지지로 손상

총리 사퇴로 되레 레바논 국민 단결

헤즈볼라의 위상도 되살아나

이란 “사우디가 헤즈볼라 위협” 경고

2016년 10월 12일 레바논 베이루트 남쪽 교외지역에서 헤즈볼라 대원들이 “헤즈볼라는 승리자”라고 쓰여진 조형물을 들고 행진을 하고 있는 모습. 베이루트=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6년 10월 12일 레바논 베이루트 남쪽 교외지역에서 헤즈볼라 대원들이 “헤즈볼라는 승리자”라고 쓰여진 조형물을 들고 행진을 하고 있는 모습. 베이루트=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12일 알자지라는 “사드 알 하리리 레바논 총리가 헤즈볼라를 거부하지 않은 탓에 사우디아라비아에 인질로 잡혀 있다”고 보도했다. 이보다 8일 전 하리리 총리는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갑자기 사임의 뜻을 밝히며 “헤즈볼라는 국가 안의 국가”라고 비판했다. 최근 중동 정세의 불안변수로 급부상한 ‘하리리 총리 전격 사퇴’가 결국은 헤즈볼라와 직접 연계돼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란과 중동 패권 경쟁을 벌이는 사우디가 이번에 겨냥했던 진짜 목표는 결국 레바논의 친이란 시아파 정당 헤즈볼라였다는 얘기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연립정부에 참여 중이다. 레바논 의회 128석 중 11석이 헤즈볼라의 몫이다. 레바논 정치는 ‘종파간 권력 분담주의’를 공식 채택하고 있는데 기독교계가 대통령을, 수니파가 총리를, 시아파는 국회의장을 각각 고정적으로 맡는 식이다. 의석 수조차 각 종파별로 배분돼 있어, 그 비율에 따라 약 20개 정당들이 선거를 거쳐 의석을 나눠 갖는다. 그런데 제도권 정당들 중 무장이 ‘공식 허용’된 곳은 헤즈볼라가 유일하다. 왜일까.

레바논 내전(1975~1990)이 한창이던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남부 침공은 헤즈볼라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적잖은 주민들이 헤즈볼라에 적극적인 동조를 보내는 이 지역은 시아파의 주거주지로, 당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의 이스라엘 공격 거점이기도 했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에 맞서 레바논 남부 국경도 책임져야 했다. 1989년 레바논 내전 종식을 위해 체결된 ‘타이프 협정’에서 다른 정파들이 모두 무장해제를 당한 반면, 헤즈볼라만 ‘무장 유지’를 허용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헤즈볼라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레바논 시민들은 이들을 ‘레지스탕스’라고 종종 부른다. 2007년 레바논 남부에 배치된 유엔평화유지군(유니필) 부사령관은 필자에게 “헤즈볼라가 남부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는 정치조직이란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10일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교외지역에서 헤즈볼라 지도자인 셰이크 하산 나스랄라의 영상 연설에 지지자들이 주먹을 들어보이면서 환호하고 있다. 이날 연설에서 나스랄라는 “사드 알 하리리 레바논 총리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억류돼 있다. 그의 사임 의사 발표는 강요된 것으로 ‘위헌’이다”라고 주장했다. 베이루트=AP 연합뉴스
10일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교외지역에서 헤즈볼라 지도자인 셰이크 하산 나스랄라의 영상 연설에 지지자들이 주먹을 들어보이면서 환호하고 있다. 이날 연설에서 나스랄라는 “사드 알 하리리 레바논 총리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억류돼 있다. 그의 사임 의사 발표는 강요된 것으로 ‘위헌’이다”라고 주장했다. 베이루트=AP 연합뉴스

헤즈볼라는 시아파이긴 해도 ‘종파를 초월한 저항세력’의 이미지도 없진 않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함으로써 수니파인 사담 후세인 정권에서 핍박받던 이라크 시아파와는 다른 입장에 선 게 대표적이다. 1992년부터 3년간 계속된 보스니아 내전 때에도 ‘억압받는’ 보스니아 무슬림 편으로 참전했다.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지난해 1월 연설에서 “보스니아 무슬림들은 시아파가 아니라 수니파”라고 강조했다. 종파를 뛰어넘어 박해받는 이들의 편에서 싸웠다는 점을 과시한 것이다. 아울러 2013년 시리아 내전 참전 이후 종파주의의 블랙홀에 빠져 버린 헤즈볼라에 대한 외부 비판을 의식한 발언이기도 했다.

올해 3월 국제위기그룹(ICG)의 ‘헤즈볼라의 시리아 수수께끼’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시리아에서 벌어진 아사드 정권 반대시위 초기에 헤즈볼라는 “시위대의 정당한 요구는 들어주고 폭력적 대응을 피하자”고 아사드 정권에 조언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리아 정부가 꿈쩍도 않고 무력 진압에 나선 데다, 반정부 진영(주류 수니파)의 무장투쟁도 급증하면서 헤즈볼라는 이란과 함께 아사드 정권 편에 적극 가담했다. 보고서에는 헤즈볼라 지도부가 ‘(동맹) 시리아를 잃으면 레바논의 운명은 이스라엘과 (수니파) 아랍권력 사이에서 꼼짝 못하게 된다’고 판단했다고 나와 있다.

헤즈볼라는 시리아 내전 참전 병사 모집 과정에서도 ‘시아파 사원 수호’라는 종파주의 카드를 적극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5월 기준 전사자가 1,700~1,800명에 달할 정도로 헤즈볼라는 격렬히 싸웠다. 병사만 잃은 게 아니다. 주류 수니파지만 반(反) 이스라엘 전선에서 연대하며 견고한 관계를 유지했던 팔레스타인 급진무장정파 하마스 등 다른 조직들과의 관계도 결국 소원해졌다. 시리아 참전으로 전투력이 일취월장한 측면도 있지만, ‘저항 세력’으로 두루 인정받았던 위상이 훼손된 건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가운데 ‘하리리 총리 사퇴’ 국면은 레바논 정치권과 국민들을 단결시킨 것은 물론, 잃어버린 헤즈볼라의 옛 위상을 오히려 되살려주는 효과를 내고 있다. 게다가 이란발(發) 메시지는 더욱 강렬하다. 지난 10일 이란 테헤란 대학의 금요기도회에서 이맘(종교지도자)인 아야똘라 세이드 아흐마드 카타미는 이렇게 말했다. “성숙하지 못한 철부지들(사우디를 가리킨 표현)이 이란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다. 그들은 헤즈볼라도 위협하고 있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9일 레바논 베이루트 시내에서 노동자들이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갑자기 사임 의사를 밝힌 사드 알 하리리 총리의 모습이 “우리는 모두 사드”라는 문구와 함께 담긴 현수막을 가로수에 걸고 있다. 베이루트=AP 연합뉴스
9일 레바논 베이루트 시내에서 노동자들이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갑자기 사임 의사를 밝힌 사드 알 하리리 총리의 모습이 “우리는 모두 사드”라는 문구와 함께 담긴 현수막을 가로수에 걸고 있다. 베이루트=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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