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들 부담감 덩달아 커지고
수험생들은 중고 문제집 찾기도
“몰아치기 공부 악영향” 조언도
수험생 아들을 둔 서울 양천구의 김모(48)씨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예정됐던 16일 아침 일찍 인근 학원의 ‘수능 연기 대비 과목별 막판 특강’에 등록했다. 해당 학원이 수능 연기가 발표된 전날 저녁부터 세 차례나 “수능을 대비할 마지막 기회”라며 보낸 문자를 보고 밤샘 고민 끝에 결정한 것. 김씨는 “21일까지 수학, 국어, 물리Ⅰ 3개 과목을 각각 2일씩 3, 4시간 듣는 데 32만원이 든다”며 “수능 연기로 아이가 불안해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수능이 23일로 1주일 연기되면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 수험생들은 버렸던 문제집을 다시 줍느라 애를 먹고, 학원ㆍ과외 업체들은 “이 때가 기회”라며 또 다시 불안마케팅에 나서 학부모를 꼬드기고 있다.
수능 당일 볼 요점노트만 남겨뒀던 수험생들은 허겁지겁 문제집을 버린 현장으로 모여들고 있다. 이날 서울 대치동 학원가를 찾은 삼수생 유모(20)씨는 “학원에서 사물함을 비워달라고 요청해 모두 버렸다”며 “수능 연기 소식을 듣고 오늘 아침 학원으로 뛰어와 겨우 몇권을 다시 찾았다”고 설명했다. 수능 연기가 발표된 전날 오후에는 수험생들이 잠옷 바람으로 학원ㆍ학교의 재활용품수거장을 찾는 진풍경이 이어지기도 했다.
수험생들이 급하게 수능 기출문제집을 사재기하면서 일부 서점 진열대는 텅 빈 상태다. 재수생 장모(19)씨는 “친구들이 동네 서점에는 문제집이 거의 안 남았다고 해서 대형학원에서 온라인으로 무료로 배포한 모의고사 문제를 인쇄해 푸는 중”이라고 했다. 수험생들이 모인 온라인 사이트에선 유명 학원에서 판매하는 중고 실전모의고사 모음집을 구매하겠다는 글까지 올라오고 있다. 이날 인터넷 서점 예스24에 따르면 15일 하루 수능 모의고사 교재(대표서 10권) 판매량은 14일에 비해 40배 폭증했다.
사교육업체들은 이러한 수험생들의 불안감을 틈타 온ㆍ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심리안정ㆍ컨디션 조절에는 특강이 필수’ ‘수업 일정별 자리 절반이상 마감’ 등의 문구로 특강 홍보에 나섰다. 경기 성남의 한 수학전문학원 관계자는 등록 문의 전화를 하자 “과목 수준 별로 15명 정도 학생을 받고 있는데, 4개 반이 모두 찬 상황이며 최상위권 반 1개에 2, 3명 자리 밖에 안 남았다”며 “원래 수강료보다 50% 할인해 줄 테니 빨리 고민을 끝내시라”고 설득했다. 특히 수험생들은 단기간에 성적을 많이 올릴 수 있는 탐구영역 특강이 유용할 것이라고 보고 너도나도 등록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학부모들의 부담감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고3 학부모 문모(47)씨는 “수능 이후 수시 전형 논술ㆍ면접 대비를 위한 과외에도 만만찮은 비용이 들 걸로 예상했는데, 수능 연기 특강까지 듣게 되면 11월 한 달 학원비만 100만원은 족히 넘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목동과 대치동 학원의 특강 1개 당 강의료는 최소 3만원, 많게는 10만원을 호가해 일주일로 따지면 70만원에 가까운 학원비를 지출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수능 직전 무리하게 특강을 듣거나 몰아치기 공부를 하면 되레 시험 당일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진청 서울 원묵고 진로진학상담교사는 “시간이 1주일 생겼다고 계획에 없던 특강을 들으며 여기에 휘둘리면 체력적으로 무리가 될 것”이라며 “그간 공부해왔던 내용을 차분히 재점검하는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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