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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 계획서 3주간 달랑 4건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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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 계획서 3주간 달랑 4건뿐

입력
2017.11.17 04:4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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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사업 병원 중 7곳 조사

의사 “임종 얘기 꺼내기 힘들어”

작성 환자 대부분 스스로 요청

가족 전원 합의도 사실상 불가능

“이러면 연명의료 되레 늘어나

심폐소생 거부 동의서 합법화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건수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건수

“저희 아버지께 죽는다는 얘기를 하면 어떻게 합니까.”

지난 10월말 연명의료결정법 시범사업에 참여한 한 대학병원. 60대 후반인 말기 간암 환자의 아들이 환자 주치의를 찾아와 거칠게 항의했다. 앞서 주치의가 환자에게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의향을 물어본 것이 아버지에게 죽음을 예고한 것 같아 불쾌하다는 것이었다. 주치의는 “이 일 이후 환자들에게 연명의료계획서에 대해 말을 꺼내는 것이 주저된다”고 말했다.

‘웰다잉’ 합법화의 첫 걸음으로 관심을 모았던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시범사업의 실적이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말기 환자의 의향을 확인하고 기록으로 남겨 환자가 원하면 연명의료를 실시하지 않는 내용인데, 연명의료결정법의 전면 시행(내년 2월 4일)을 앞두고 의료계에서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16일 허대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시범사업에 참여한 병원 10곳 중 7곳을 조사한 결과, 사업이 시작된 지난달 23일부터 지난 12일까지 3주간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건수는 총 4건에 그쳤다. 신촌세브란스병원과 서울성모병원에서 각각 3건, 1건이 작성됐고 서울대ㆍ영남대ㆍ울산대ㆍ충남대 병원 5곳은 한 건도 작성되지 않았다. 대학병원 한 곳당 만성질환으로 사망하는 말기 환자는 통상 하루 2~4명으로 이 기간 병원 7곳에서 300~500명 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연명의료계획서는 4건만 작성된 것이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의료진이 말기 환자에게 임종기가 됐을 때 연명의료를 받을 것인지를 물어 그 결과를 기록하는 문서다. 이후 환자가 의식이 없을 때 환자의 의사 표시를 대신하는 법적 효력을 갖는다.

하지만 의료현장에서는 “말기를 고지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커서 연명의료계획서 상담은 현 상황에서 매우 어렵다”(서울대병원) “법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가족 전원의 합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울산대병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연명의료계획서를 받은 신촌세브란스병원과 서울성모병원 역시 환자들이 먼저 계획서 작성을 요청했거나 환자가 의사여서 이례적으로 가능했다고 전했다.

기존에도 병원에서는 환자들에게 심폐소생거부(DNR) 동의서를 받아왔다. DNR 동의서는 환자 또는 대리인 한 명이 ‘유사시 심폐소생 등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문서로, 연명의료계획서와 달리 법에 근거가 없다. 병원들은 연명의료법이 제정되면서 DNR 동의서를 받는 것이 형사 처벌이나 소송에 노출될 소지가 있어 부담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이에 의료 현장에서는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시 환자 동의를 받는 절차(환자 의식이 없을 시 가족 전원 합의 필요 등)를 대폭 간소화 하거나, DNR 동의서를 법적으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허대석 교수는 “이런 보완 없이 법이 시행되면 의사들이 법적 위험을 피하기 위해 연명의료를 더 많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환자 의견 확인 절차를 생략ㆍ축소하는 것은 인권 침해 소지가 크다는 반론 역시 만만치 않다. 이윤성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장(서울대 의대 법의학 교수)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의 발전 수준에 맞지 않고 부작용 우려도 있다”면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등이 활발해져서 환자가 먼저 연명의료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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