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부, 북과 물밑 접촉 시도로 테러지원국 지정 미뤄와
백악관 강경 입장으로 대북 협상 전망은 밝지 않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아시아 순방 보고 성격의 연설에서 북한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이란 기존 강경 방침을 재확인하면서도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결정은 발표하지 않았다. 북핵 문제에 강경한 백악관 참모진과 북한과의 협상 실마리를 찾고 있는 국무부 사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국무부에 시한부 말미를 준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아시아 순방 직전인 2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김정남 암살 사건을 명백한 테러 행위로 규정하며 테러지원국 재지정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고,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8일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 말미에 결정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이전 정부에서 북한을 유인하기 위한 희망적인 시도로 테러지원국 지정을 철회했으나 당연히 효과가 없었다”고 냉소적으로 평가하며 “북한은 이전 정부에서 테러지원국의 기준에 명백히 부합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이같은 입장에 따라 이날 순방 보고 연설에서 테러지원국 결정이 나올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하지만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당연시하는 백악관과 달리,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국무부의 기류는 달랐다. 테러지원국은 매년 6월 전후로 테러국가보고서를 통해 발표되지만 국무부는 당시 김정남 암살 사건에도 북한 지정을 피했고, 더군다나 8월 2일 발효된 ‘이란ㆍ러시아ㆍ북한 제재법’에 따라 90일 이내인 이달 2일까지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 여부를 의회에 통보해야 함에도 아직까지 미뤄두고 있다. 국무부의 공식 설명은 ‘반복적으로 테러를 지원한 증거’를 필요로 하는 법적 요건으로 인해 “기술적인 법률적 문제가 있다”(헤더 노어트 대변인)는 것이지만, 북한이 60일이 넘도록 도발을 자제하면서 조성되는 대화 모멘텀을 이어가기 위해 지정을 피하는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10일 “북미간 메시지가 오가는 2,3개 대화 채널이 가동 중”이라며 “서로가 ‘첫 대화를 할 때가 됐다’고 할 날이 올 것”이라며 물밑 접촉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연설에서 테러지원국 지정 결정을 뺀 것은 일단 소관부처인 국무부의 입장을 고려해 외교적 활동의 시간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무부가 지닌 대북 협상의 레버리지가 거의 없어 협상 재개의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은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 불신을 완화하는 ‘동결 대 동결’ 식의 점진적 협상 방식을 거부하고 사실상 북한의 백기 투항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도 순방 중 브리핑에서 북한이 협상에 나오더라도 주한미군 철수 등을 요구할 것으로 보며 대북 협상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백악관은 그간 북한의 정권교체나 흡수통일, 북한 침공 등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국무부의 ‘4NO’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미 공화당 의원들은 지난달 북한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며 국무부를 압박하고 있다. 국무부로선 외교적 개입의 시간과 공간이 점점 더 좁아지는 상황에 놓여 있는 셈이다. 지난 2년간 북한과 반관반민(1.5트랙) 접촉을 이어온 수전 디매지오 뉴아메리카재단 국장은 최근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외교관들이 일을 하고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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