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국가정보원장 3인방이 모두 “청와대 측이 먼저 요구해 원장 몫의 특수활동비를 건넸다”고 주장했다. 국가정보기관 수장 3명이 구속을 면하기 위해 한날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유례 없는 ‘국정원 치욕의 날’이었다.
이병호(77) 전 국정원장은 16일 서울중앙지법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 심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지시를 직접 받고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상납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통령의 ‘직접 지시’를 밝힌 건 3명의 전직 국정원장 중 이 전 원장이 처음이다.
같은 날 먼저 영장 심사를 받은 남재준(73) 전 국정원장은 “박 전 대통령의 직접 지시는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이 전 원장은 상납을 처음 지시한 이가 누구인지에 대해 “누군가 ‘청와대에 돈을 줘야 한다’고 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나중에 청와대에서 만난 안봉근(51ㆍ구속) 당시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이 귀엣말로 “청와대에 돈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2시간여 심사가 끝난 뒤 남 전 원장 변호인은 “(당시) 비서관이 달라고 했으니 줬지 먼저 상납한 것은 아니다”며 “남의 돈을 전용한 게 아니라 국정원장이 쓸 수 있는 특수활동비에서 준 것”이라고 말했다. 변호인은 이어 “원장님은 청와대에서 달라니까 청와대 돈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청와대에 주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남 전 원장 측은 “도주나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다”며 “육군 참모총장까지 지냈는데 뭐가 무서워 도망가겠느냐”며 불구속 수사를 주장했다.
이병호ㆍ남재준 전 원장과 함께 구속 기로에 선 이병기 전 원장은 청와대 상납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뇌물로 인지했던 것은 아니란 취지로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박근혜 정부 당시 매달 5,000만~1억원의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이재만ㆍ안봉근 전 비서관 등을 통해 청와대로 상납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검찰은 이 돈을 박 전 대통령이 사적으로 쓴 것으로 보고 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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