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신하지 않는 늙은 기업을 보호하는데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잠재력 높은 어린 기업이 성장궤도에 올라설 수 있도록 정책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 “우리 경제 혁신과 성장을 이끌 현실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대한상의는 ▦경기 불안 요인 ▦4차 산업혁명 ▦고용 환경 변화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 경제 현안에 대해 학계, 컨설팅사, 시민단체 등 경제 전문가 50여명에게 진단과 자문을 의뢰했고, 그 결과를 담은 제언집을 박 회장이 김 부총리에게 직접 전달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세계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우리 기업들은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 중이지만, 실적이 일부 대기업에 편중된 점을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기업 실적 쏠림 현상이 장기적ㆍ구조적 문제인데, 그동안 정부 정책은 기업을 연명시키는 데 그쳤다고 지적했다. 신관호 고려대 교수는 “혁신형 중소기업 육성(노무현 정부), 동반성장(이명박 정부), 경제민주화(박근혜 정부) 등 역대 정부가 양극화 해소 정책을 펼쳤지만 중소기업 연명에만 집중돼 이들의 역량 강화와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전 세계가 ‘혁신의 각축장’으로 변했지만 우리 기업들은 여전히 규제 장벽에 둘러싸여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혁신을 통해 신사업 기회와 자수성가 기업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정해진 것 빼고 다 할 수 있는 네거티브 규제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언집에는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의 사업 모델 가운데 57개가 한국에선 규제 때문에 사업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매켄지의 조언도 담았다.
노동 환경 변화와 관련해선 “글로벌 기업들이 생산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있지만, 우리는 저임금, 장시간 근로에 의존하고 있다”며 “구시대적 노동시장 관행을 걷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언집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경제계의 자기반성과 비판적인 시민단체의 목소리도 담아 눈길을 끌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과거보다 기업의 몸집이 커진 만큼 사회를 위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용만 회장은 “과거에 해오던 방식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 있고, 방향은 알지만 이해관계자의 저항에 부딪혀 못하던 부분이 있다”며 “이제는 백지상태에서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언문을 받은 김동연 부총리는 “기업인들은 경제발전을 위해 같이 가는 파트너”라며 “제언을 정책에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화답했다.
한준규 기자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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