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먹여 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이생진의 시 ‘벌레 먹은 나뭇잎’의 한 구절이다. 시인은 잎사귀에 난 크고 작은 상처를 보며 희생적 삶의 고귀함을 떠올렸다.
나뭇잎이 먹여 살린 벌레들은 어느새 다가온 겨울의 문턱에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찬바람에 떨어진 나뭇잎만 저마다 ‘별처럼 아름다운’ 상처를 안고 뒹굴 뿐. 거리마다 거무튀튀하게 말라 일그러진 낙엽은 그렇게 만추(晩秋)의 풍경을 완성해 가고 있다.
14일 서울 남산공원 산책로에서 낙엽을 주워 찬찬히 바라보았다. 벌레가 갉아먹어 구멍 뚫린 잎사귀가 영화에서 본 듯한 외계인의 얼굴로 눈을 마주친다. 그 눈을 통해 하늘을 보고 거리를 보고 아직 지지 않은 은행잎을 보았다. 아무렇게나 뚫린 구멍이 문득 오리처럼 보이더니 강아지가 되어 마음 속에 들어온다. 벌레 먹은 낙엽의 새로운 발견이 재미있고 신기하다.
벌레는 잎사귀의 가장 약하고 부드러운 속살만을 골라서 먹어 치웠다. 식성 좋은 녀석들이 훑고 지난 자리엔 육안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얇고 가는 잎맥만 그물처럼 남았다. 이번엔 마이크로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로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한 방향으로 길쭉하게 또는 여러 갈래로 갈라진 흠집의 확대된 이미지가 마치 뒷골목 담벼락에 몰래 그린 그래피티 같다. 자연이 던진 메시지를 읽고 싶어 한참을 더 들여다본다.
찬바람이 휙 불 때마다 길가에 쌓인 낙엽이 흩어진다. 아쉬움에 또 한 잎 주워 손바닥에 올려 놓고 눈을 맞췄다. 이젠 귀족의 손처럼 매끈한 잎사귀보다 상처투성이 낙엽이 왠지 더 가을 같다. 나뭇잎의 아름다운 삶, 벌레 먹은 사연을 떠올리며, 미소 한 번 지어 이 가을을 보낸다.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박미소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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