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앙 가까운 한동대 이번주 휴강
포스코 제철소 비상근무 돌입
포항가속기硏 가속기 이용 중단
종합병원 응급실 환자 급증
지난해 9월 경북 경주 지진에 이어 15일 경북 포항에서 규모 5.4의 지진과 잇따른 여진이 발생하자 포항시민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규모로만 따지면 지난 해 경주 지진에 이은 역대 2번째지만 진앙이 얕았던 까닭에 흔들림은 훨씬 심했고 주민들이 느낀 공포도 더욱 컸다.
진앙과 가까운 포항 한동대의 피해가 특히 두드러졌다. 기숙사의 경우 건물 일부에 금이 가고 전기가 끊기면서 학생들이 모두 운동장으로 긴급 대피했다. 학교 측이 이번 주 휴강하기로 하면서 기숙사 학생들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차량 피해도 심각했다. 흥해읍 주택가와 상가지역은 물론 포항 일부지역도 건물 외벽 구조물이 추락하면서 아래 세워둔 차량의 피해가 극심했다. 북구 흥해읍 한 빌라단지에선 철근콘크리트 슬라브건물 외벽에 부착한 붉은 벽돌이 한꺼번에 떨어져 담벼락 가까이 세워둔 승용차 10여대가 파손됐다.
또 북구 지성학원과 상가골목 등에서도 벽돌과 간판 등 건물외벽 구조물이 추락해 대거 파손됐다.
포항지역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는 수업을 중단하고 일제히 대피시켰다. 지진 이후에도 여진이 계속되자 건물로 다시 들어가지 않고 바깥에서 장시간 대기했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차량 대신 도보로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김진희(37ㆍ여)씨는 “차를 타기가 겁나 일부러 10여분 거리를 걸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며 “어린이집에서 다행히 알림 문자를 보내 안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포항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인 세명기독병원은 이날 오후 3시 현재 진행 중인 수술 3건을 마무리한 후 추가 수술을 중단했다. 병원 측은 이날 발생한 지진이 내진 설계된 기준(7.0)보다 낮아 환자를 강제대피 조치하지 않았지만 놀란 환자들과 보호자 수 백여 명이 병원을 뛰어 나오기도 했다.
기독병원 관계자는 “날씨가 많이 추워졌고 수액을 맞거나 중환자들은 대피하는 게 위험할 수 있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병원장을 중심으로 긴급회의를 열었다” 말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와 방사광가속기가 있는 포항가속기연구소도 피해 파악과 함께 비상 근무체계에 돌입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관계자는 “아직 설비가동에 특별한 피해는 없다”고 했고 포항가속기연구소 관계자는 “아직 장비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여진 발생에 대비해 19일까지 3세대와 4세대 가속기 이용을 중단시켰다”고 말했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이날 오후 2시 포항시 북구 흥해읍 영일만 3일반산단에서 진행된 안전로봇 실증시험센터 착공식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시청으로 돌아왔다. 공교롭게도 착공식 현장이 지진 진원지인 흥해여서, 참석자들은 행사 도중 중심을 잡기 어려울 정도의 흔들림이 감지되자 서둘러 자리를 뜨기도 했다.
포항시청 민원실에는 지진 피해 신고로 전화가 폭주했다. 진원지인 포항 북구 흥해읍의 한 주민은 포항시청 종합상황실을 직접 찾아와 “집이 무너져 갈 곳이 없는데 어디에 있어야 하느냐”며 따지기도 했다.
포항시내 종합병원 응급실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지진으로 다친 환자들이 속출했다. 포항 성모병원에는 집 담이 무너지면서 머리를 크게 다친 환자(78)가 뇌출혈 수술을 받았고 대피 중 넘어져 타박상 등을 입은 10여명이 응급실을 찾는 등 환자가 계속 늘었다.
포항지역 대형 산부인과 등은 일부 산모들의 제왕절개 분만 예정일을 연기했다.
슈퍼와 마트 등에는 생필품과 비상 식량을 구입하는 고객들로 북적거렸고, 편의점과 분식집은 김밥과 도시락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광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주부 이은정(35)씨는 “불을 쓰는 게 너무 겁이나 김밥을 사러 갔는데 30분 넘게 줄을 서서 겨우샀다“며 “라디오와 손전등을 넣어 생존배낭도 급하게 쌌는데 밤에 큰 지진이 또 올까 봐 너무 겁이 난다”고 말했다.
강진 이후 계속된 수십 차례 여진으로 공포에 질린 상당수 시민은 밤이 늦도록 집에 들어가는 걸 포기했다. 흥해체육관에는 지진으로 일부 건물이 기운 대성아파트 주민 200여명이 대피했다. 대도중과 항도초등학교에도 주민 300여명이 몸을 옮겼다. 한동대, 선린대 기숙사에 있던 학생 300여명도 인근 기쁨의 교회에 마련된 임시대피소로 피했다. 집 근처 공원과 운동장 등에 차를 세우고 이불과 생수 등을 챙겨 잠을 자는 시민들도 속출했다.
김유민(32)씨는 “퇴근 후 집에 와 보니 지은 지 얼마 안된 아파트인데도 욕실 벽 등에 금이 가 있고 벽체 등이 떨어져 있어 불안해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며 “불편하지만 가족들과 차에서 자기로 했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교육지원청은 이날 지진으로 시내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를 16,17일 이틀간 휴업하기로 했다. 포항교육청 관계자는 “교육부가 수능을 일주일 연기함에 따라 포항 시내 수능 시험장 12개 학교에 피해 파악과 복구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포항=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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