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ㆍ피치 잇따라 신용등급 ‘디폴트’ 수준 강등

민생 불안에서 초래된 정정 혼란을 힘으로 억누른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권이 결국 ‘국가 부도’ 위기에 놓였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연이어 베네수엘라의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경제마저 완전히 파탄 날 지경에 이른 것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14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의 국가 신용등급을 기존 극단적 투기등급(CC)에서 ‘선택적 디폴트(SDㆍSelective Default)’로 두 단계 강등했다. 정부가 전날까지 30일 유예기간이 만료된 외화표시 국채 이자 2억달러(2,225억원)를 지급하지 못해서다. SD는 외채를 갚지 못하는 디폴트(D)의 바로 전 단계로 일부 채권에 대해서만 상환 가능성이 남아 있는 상태를 뜻한다. 다른 신용평가사 피치도 이날 베네수엘라의 신용등급을 SD와 비슷한 ‘제한적 디폴트(RD)’로 두 단계 하향 조정했다.
베네수엘라의 디폴트 가능성은 이미 가시권에 들어왔다. 현재 외채 규모는 1,500억달러(167조원)인 반면, 외환 보유고는 100억달러를 밑돌고 있다. 신용평가사들은 이자 상환 만기를 지키지 못할 채권이 6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재정 수입의 80~90%를 원유 수출 대금에 의존하는 베네수엘라는 2013년부터 저유가 시대가 도래하면서 식량 파동 등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했다. 하지만 마두로 정권은 의회를 해산시키고 정권 퇴진을 바라는 반정부 시위를 유혈 진압해 투자자들의 눈 밖에 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마두로 정권의 권력 남용을 문제 삼아 신규 채권 거래 금지 등 고강도 경제제재를 단행하자 위기는 한층 심화됐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35억달러 상당의 이 나라 국영 석유회사 채권을 갖고 있다”며 “위험성을 알고도 높은 수익률에 현혹돼 투자를 지속한 탓에 경제 체질을 개선할 기회를 잃었다”고 비판했다.
더욱 암울한 것은 채무 재조정 협상 등 퇴로 가능성까지 막혔다는 점이다. 전날 수도 카라카스에서 채권자 그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채무조정 회의는 불과 25분 만에 끝났다. 애초 타렉 엘 아이사미 부통령이 정부 협상 대표로 나선 것부터가 성과를 기대하기는 무리였다. 그는 마약 밀매 혐의로 미 재무부가 지정한 제재 목록에 오른 인물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베네수엘라 정부는 짐짓 여유를 부리고 있다. 정부는 “지연된 해외채권 이자 지급이 성공적으로 시작됐다”면서 엉뚱한 반응을 내놨다. 마두로 정권은 중국과 러시아가 구원투수가 돼 줄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두 나라가 보유한 베네수엘라 채권은 각각 280억달러, 80억달러에 달한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정부가 채권단에 채무조정을 요구한 것도 최악의 경우 중국과 러시아가 도와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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