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이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에 기재된 사인을 9개월 만에 수정한 것에 대해 감사원이 주의 조치했다.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중요사항을 지연 처리해 기관의 대외 신뢰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판단이다. 다만 수정 과정에서 ‘외압’ 등은 없었다고 봤다.
감사원은 15일 서울대병원 감사 결과 총 31건의 위법ㆍ부당 사항을 확인해 ‘백남기씨 사망진단서 수정업무 처리 지연’ 등 20건에 대해 주의조치 하는 등 처분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특히 백씨 사망진단서 작성과 관련한 ‘외압’ 의혹 등도 살펴봤지만 별다른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서울대병원 기관운영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은 백씨의 사망진단서 상 사망 종류를 2016년 9월 ‘병사’에서 지난 6월 ‘외인사’로 수정했다. 백씨는 2015년 11월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1차 민중 총궐기’ 집회에서 경찰 살수차의 물줄기를 맞고 쓰러진 뒤 서울대병원에서 317일 동안 투병하다 2016년 9월 사망했다.
백씨 사망 당시 주치의였던 백선하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담당 전공의 A씨에게 사인을 ‘병사’로 기록해 사망진단서를 작성토록 지시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외압 의혹이 제기되는 등 사회적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서울대병원은 2016년 10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사망진단서 작성과정을 살펴봤다. 그 결과 사망진단서가 ‘진단서 등 작성ㆍ교부 지침’과 다르게 작성된 것을 확인했지만, 외압은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사망원인의 판단은 담당 의사의 재량에 속하는 데다, 사망진단서 작성을 포함한 모든 진료과정에도 강요는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백씨 유족이 소송을 제기하자 서울대병원 의료윤리위원회는 올해 2월 소송 대응 관련 회의를 개최했지만, 주치의 백 교수가 사망진단서상 사인을 수정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고수하면서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병원 측은 법적 측면에서 사망진단서 작성 명의자인 전공의 A씨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봤지만, 당시 A씨가 백 교수 팀에서 수련을 받게 되면서 약 두 달간 논의를 중단시켰다. 사제지간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 조치였다는 게 병원 측 설명이다.
서울대병원은 5월 다시 소송대응 회의를 열어 전공의 A씨가 사망진단서 수정할 의사가 있음을 확인했다. 다만 A씨는 “백 교수가 병사를 고수하는 상황에서 임의로 수정하기 어려우니 병원 차원에서 수정할 근거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서울대병원은 이에 6월 윤리위를 다시 열어 “전공의에게 권한과 책임이 있음을 확인하고, 수정할 것을 권고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이에 따라 6월 14일 사망진단서 수정이 이뤄졌다.
감사원은 이와 관련해 서울대병원이 사망진단서 정정 관련 논의를 2개월여 중단시키는 등 최종결론을 지연시킨 점을 문제 삼아 주의조치 했다.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중요사항에 대해서는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해 사회적 논란을 해소하고 기관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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