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만에 TV 출연 “곧 돌아갈 것”
사우디 배후 조종설 힘받아
중동의 양대 맹주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포스트 이슬람국가(IS) 시대’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지난 4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전격 사퇴를 발표하고 자취를 감췄던 사드 알 하리리(47) 레바논 총리가 8일 만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 “곧 레바논으로 돌아가겠다”면서 사우디 억류설을 부인했다. 하지만 하리리 총리는 실제로 사우디 정부 통제 하에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12일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하리리 총리는 사우디 리야드 내 자택에서 가진 알무스타크발(퓨처)TV와의 인터뷰에서 “나의 사임이 레바논의 위험한 상황을 알리는 ‘긍정적인 충격’이 되었으면 한다”며 친(親)이란 무장정파인 헤즈볼라의 지역 개입이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헤즈볼라가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는 조건으로 사퇴를 철회할 수도 있다”며 사퇴 철회 가능성도 시사했다. 레바논과 사우디 시민권을 모두 가진 하리리 총리는 친(親)사우디 정치인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오늘날 우리는 예멘과 바레인에 대한 이란과 헤즈볼라의 개입을 볼 수 있다”며 “(헤즈볼라에 대한) 미국 제재에 더해 아랍국들의 제재까지 이뤄지면 레바논은 어디에 상품을 수출해야 하며, 레바논 아이들은 어디에서 일을 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나는 이 곳에서 자유롭다. 조만간 레바논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가택 연금 상황에 놓여있다는 소문을 일축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사우디가 이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기 위해 하리리 총리를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레바논에서 이란이 지원하는 헤즈볼라의 영향력이 커지자 사우디가 하리리 총리를 압박해 사임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로이터통신은 하리리 총리 측근 등의 말을 인용해 “하리리 총리가 사우디에 도착했을 때 휴대폰을 압수당했으며, 사우디가 준비한 사퇴 발표문을 그대로 읽도록 강요당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방송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실제로 그가 자유로운 상황에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NYT는 “그가 왜 레바논이 아닌 사우디에서 갑작스럽게 사임을 발표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고, 그가 인질로 잡혀있는지 여부도 발언을 통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며 “친사우디 정당 소유 매체를 통해 인터뷰를 한 점, 인터뷰에서 상당히 창백하고 피곤해 보였다는 점, 방에서 누군가가 지켜보는 것을 의식한 듯 눈을 한 번씩 다른 쪽으로 돌린 점 등은 의혹을 오히려 증폭시킨다”고 보도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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