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위 ‘입지타당성 재조사’ 요구
원희룡 지사 간담회서 “일부 수용”
재검증 조사 등 국토부에 요구해서
하자 없으면 반대 투쟁도 중단키로
道와 보조 맞춰 온 국토부는 당혹
합의안 수용 여부 등 불씨는 여전
“길거리에 천막을 치고 35일째 농성을 하고 있다. 어떤 이는 곡기를 끊고 목숨을 걸고 단식 중이다. 우리의 요구는 간단하다. 부실용역인 제2공항 입지타당성 재조사를 실시해 달라.”
강원보 제주 제2공항 성산읍반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13일 제주도의회 소통마당 회의실에서 진행된 제주도와의 공식간담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원희룡 제주지사에게 요구했다. 입지타당성 재조사 불가 원칙을 밝혀왔던 원 지사는 이날 반대위의 주장을 일부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제2공항 건설 사업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와 보조를 맞춰 온 도가 갑자기 반대위의 입장을 전격 수용하면서 2년 넘게 이어온 갈등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이번 합의는 반대위가 제주도청 앞에 천막을 치고 무기한 농성에 들어간 지 35일만에 이뤄졌고, 김경배 반대위 부위원장이 한달여 넘게 이어온 목숨을 건 단식투쟁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날 합의 내용을 보면 도와 반대위는 공동으로 제2공항 부지로 성산읍 일대를 선정한 제주 공항인프라 확충 타당성 용역 결과와 관련해 제기되고 있는 부실의혹 해소를 위한 검증조사와 제2공항 기본계획 용역을 분리해 추진토록 국토교통부에 요구키로 했다. 두 가지를 동시에 시작하지만 조사기관을 달리해 투명성과 구속력을 모두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전 타당성 용역 검증에 중대한 하자가 있으면 기본계획 용역을 중단하고, 반대로 검증에 중대한 하자가 없다면 반대대책위도 용역 결과를 수용키로 했다.
강원보 위원장도 "재조사에서 우리의 주장이 다 깨지고 허구로 나오면 무슨 명분으로 반대를 하겠느냐"고 했다. 재조사 결과를 수용하겠다는 의미다.
결국 공은 국토부로 넘어 간 셈이어서 국토부로서는 당혹스러운 입장에 놓였다. 국토부 관계자는 “아직까지 제주도로부터 공문이 접수된 게 없다”며 “공문의 접수되면 내부검토를 거쳐 합의안 수용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을 아꼈다.
앞서 2015년 11월 10일 국토부와 제주도가 제주 제2공항 조성 예정지로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를 발표한 이후 2년간 성산읍 주민들의 반대는 극심했고, 지역사회도 찬ㆍ반 입장으로 나눠져 갈등의 골도 깊어졌다.
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에서 잃게 된 성산읍 주민들은 제2공항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반대 투쟁을 이어왔다. 이 때문에 국토부는 올해 1월 제2공항 기본계획수립 용역을 발주할 계획이었지만, 1년 가까이 진척을 보지 못했다. 기본계획이 수립돼야 기본 및 실시설계, 용지 보상 및 공사 착공 등 후속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또 연내에 용역을 발주하지 못하면 관련 예산 39억원이 불용처리돼 향후 제2공항 조성사업 추진이 더 늦춰질 수밖에 없어 국토부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이 때문에 국토부는 최근 반대위 농성장을 직접 찾아와 합의점을 찾으려고 대화를 시도했지만 오히려 갈등만 더 커졌다.
지난 8일 반대위는 기자회견을 갖고 “국토부가 ‘선 기본계획수립 용역 발주 후 타당성 재조사’라는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을 주장하고 있다. 기본계획수립 발주 계획을 포기하고 원점에서 사전 타당성 조사를 다시 실시하는 것 외에 받아들일 수 있는 안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국토부는 참고자료를 통해 “반대대책위의 ‘입지 타당성 재조사’ 요구 사항 등을 진정성 있게 수용하기 위해 ‘제주 제2공항 입지 타당서 재조사 및 기본계획수립 용역’을 통해 타당성 재조사를 우선 중점 실시할 계획”이라며 반대위의 불수용 입장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결국 중재자로 나선 도가 우여곡절 끝에 반대위와 합의점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국토부의 합의안 수용 여부, 입지 타당성 재조사 결과에 대한 반대위의 수용 여부 등 갈등의 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제주=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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