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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판 미키마우스’ 크르텍, 판권 분쟁에 휩싸인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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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판 미키마우스’ 크르텍, 판권 분쟁에 휩싸인 사연

입력
2017.11.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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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프라하의 한 상점에서 아기 두더지 ‘크르텍’ 인형을 판매하고 있다. 크르텍은 60년 동안 체코에서 사랑 받고 있는 국민 캐릭터다. 뉴욕타임스 캡처
체코 프라하의 한 상점에서 아기 두더지 ‘크르텍’ 인형을 판매하고 있다. 크르텍은 60년 동안 체코에서 사랑 받고 있는 국민 캐릭터다. 뉴욕타임스 캡처

‘공산주의판 미키 마우스’

체코의 국민 캐릭터인 아기두더지 ‘크르텍(Krtek)’에 붙은 별칭이다. 1956년 체코의 애니메이터 즈데넥 밀레르가 고안한 이 캐릭터는 미키 마우스를 비롯해 자본주의 총본산 미국의 기업 디즈니 캐릭터를 접할 수 없었던 동구권 대중 사이에서 미키 마우스와 동급의 위상을 누렸다.

공산권의 상징이었던 이 캐릭터가 아이러니하게도 현재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싸움에 휘말려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23일 크르텍의 원작자 밀레르의 자손들이 수백만달러에 이르는 수익의 산실인 크르텍의 캐릭터 판권을 놓고 치열한 법정 다툼을 벌였다고 전했다.

그간 크르텍의 권리는 밀레르의 손녀 카롤리나 밀레로바(28)가 행사했다. 그는 2011년 조부 밀레르 사후 크르텍의 캐릭터 판권을 독점할 목적으로 기업을 세우고 지난 6년간 여러 차례 상표권 계약까지 맺었다. 그러나 밀레로바의 모친인 바르보라 밀레로바와 유산관리인 밀레나 피셰로바는 실제 크르텍의 캐릭터 판권은 5명에게 공동 상속됐다며 밀레로바가 이를 독점하는 것에 반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밀레로바는 “나는 14세 때부터 할아버지와 함께 살며 누구보다 가까이서 크르텍 관련 사업을 도왔다”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내게 모든 저작권을 위임한다는 서면을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달 17일 법원은 그가 제출한 서면에 담긴 내용이 너무 모호해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밀레로바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밀레로바가 크르텍의 판권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밀레르 생전 크르텍의 판권을 획득해 침구류를 생산하며 큰 수익을 얻었던 기업 마테조프스키의 알레나 삼코바 대표는 “시장에 저질 복제품이 난무하면서 수익을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판권 계약 조건이 업체마다 너무 달라 무엇이 정확한 계약인지조차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간 밀레로바가 부여한 판권에 대대적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밀레르의 캐릭터 아기두더지 크르텍을 주인공으로 한 동화책은 한국에도 출간된 바 있다.
밀레르의 캐릭터 아기두더지 크르텍을 주인공으로 한 동화책은 한국에도 출간된 바 있다.

크르텍은 체코어로 '두더지'라는 뜻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체코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밀레르는 어린이를 위한 교육용 애니메이션을 고안하던 중 프라하 숲 속에서 두더지가 판 굴을 보고 영감을 얻어 크르텍을 만들었다. 1956년 교육용 애니메이션 ‘아기 두더지 크르텍’이 방영되면서 크르텍은 체코를 비롯해 중부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비록 미키 마우스 없는 동구권의 왕이었지만, 냉전이 끝난 후에도 체코에서 크르텍의 위상은 그대로다. 크르텍과 함께 유년기를 보냈다는 체코 시민 온드레이 호이어(37)는 “지금도 우리 집 막내는 매일 밤 크르텍 인형을 꼭 껴안고 잠든다”고 말했다. 항상 미소를 띠고 있는 크르텍의 긍정 에너지가 여전히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외려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 공산정권이 붕괴하며 빗장이 풀리자 크르텍은 중국, 인도, 일본 시장까지 넘봤다. 미국에선 상대적으로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미국 우주인 앤드류 퓨스텔은 2011년 우주왕복선 엔데버호를 타고 우주로 나아갈 때 크르텍 인형과 동행했다. 크르텍의 모험담을 담은 책은 20개국으로 출간돼 500만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한 바 있다.

여전히 수백만달러의 가치가 있는 크르텍이기에 판권을 둘러싼 잡음은 어찌 보면 필연이었다. 체코 브르노 마사리코바대학의 차바 살로 사회학과 교수는 “크르텍은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매우 잘 알려진 상징적인 캐릭터”라며 “공산주의 시기를 거쳐 지금까지 문화의 아이콘으로 견고히 자리매김했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다”고 설명했다. 살로 교수는 “판권 분쟁은 산업적으론 중요한 문제일 수 있으나 크르텍을 향한 대중의 사랑을 꺾진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혜인 인턴기자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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