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 기후변화협약 탈퇴를 선언한 후 미국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제회의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올해 독일 본에서 진행 중인 제23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에도 미국관(館)을 따로 개설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의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따로 연대를 구성해 비공식 미국관을 열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공동전선에 계속 참여하겠다고 약속했다.
9일(현지시간) 독일 관영 도이체벨레는 23차 당사국총회가 열리는 본에서 미국의 주지사ㆍ시장ㆍ최고경영자(CEO)ㆍ종교지도자들이 ‘미국의 약속: 우린 여전히 (기후변화협약을) 지킨다’는 표어를 내걸고 미국기후행동센터란 이름의 비공식 미국관을 개설했다고 소개했다. 미국 정부가 공식 국가관을 개설하지 않자 독자적으로 나선 것이다.
공화당 소속인 짐 브레이너드 인디애나주 카멜시 시장은 도이체벨레에 미국관이야말로 미국의 진정한 민의를 대변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다른 나라들처럼 국민들이 만드는 나라이며 이 건물(미국관)은 미국 사회의 모든 부문을 대표한다. 이보다 더 ‘공식적’일 수는 없다. 연방정부가 이번 회담을 위해 더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쉽지만 미국인들은 (이 건물로) 한 데 모여 입장을 명확히 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여전히 (기후변화협약을) 지킨다(We Are Still In)’ 동맹은 지난 6월 지방정부와 기업, 대학과 연구소의 수장 1,200여명이 모여 출범했다. 미국 50개주 가운데 15개주 주지사와 시장 300여명이 동참했고 주요대학과 월마트ㆍ구글 같은 대기업도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미국이 파리협약에서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 즉 2025년까지 26~28% 감축을 달성하기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반란 동맹’의 선두에는 자체만으로 전세계 국가 가운데 6위 수준 경제력을 지닌 캘리포니아주가 있다. 민주당 소속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주지사는 동맹 공동 창립자인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과 함께 11일 본을 방문, 미국 내 동맹에 참여하는 주정부와 시당국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노력한 성과와 향후 전망을 발표할 예정이다. 로스앤젤레스를 대변하는 리카도 라라 캘리포니아주의회 의원은 “캘리포니아를 대표해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공식 반란군으로부터의 인사를 전한다”고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 협약 탈퇴를 선언했지만 절차상 2020년 11월까지는 탈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미국은 소규모 대표부를 본에 파견했다. 그러나 행사에 파견된다고 등록한 미국의 공식 대표 인원수는 48명으로 캐나다(161명)의 3분의1에도 못 미친다. 그나마도 현장에서는 실제 파견한 대표가 10여명에 불과하다는 후문이 나왔다. 여기에 매 당사국회의마다 해 오던 국가관 개설을 최초로 거부하며 기후변화 회의론 성향이 강한 트럼프정부의 태도를 드러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영국, 프랑스는 모두 국가관을 개설했다.
지난 6일부터 17일까지 열리는 제23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는 기후변화로 국토가 침수 위기에 빠진 남태평양 국가들의 주민을 수용한 피지가 의장국을 맡고 있다. 피지에는 총회 인원을 수용할 만한 장소가 없어 독일 본이 대신 개최지로 선정됐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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