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 중인 대학생 류모(24)씨는 8일 ‘회계동아리’ 인터넷 카페에 들어갔다 ‘멘붕’에 빠졌다. 2018년도 공인회계사 1차 시험이 내년 2월 11일에 시행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올해(2월26일)과 지난해(2월28)의 시험일정을 고려했을 때 내년 2월 마지막 주 일요일인 2월25일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류씨는 2주나 앞당겨진 시험일정에 공부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2주면 전과목 필기노트를 한 번 더 보고, ‘하루 만에 끝내기’ 시리즈를 여러 번 읽어볼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게 류씨의 설명이다.
예상보다 이른 시험 날짜에 당황한 이는 류씨만이 아니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공인회계사에 도전하는 김모(25)씨는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다”라며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는) 주변 친구들 모두 시름에 잠겨있다”고 전했다. ‘회계동아리’ 카페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1차 시험이 앞당겨지면 처음 시험을 보는 응시자들에게 불리한 것 아니냐”, “다같이 항의해서 날짜를 미루자” 등 불만 섞인 글이 올라와 있다. ‘원가관리’ 등 비중이 작은 일부 영역을 포기해야겠다는 목소리도 있다.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한 네티즌은 “이러다 변리사 시험도 앞당겨지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며 불안한 심리를 표하기도 했다.
국가기관에서 시행하는 주요 시험의 들쭉날쭉한 일정에 ‘을’ 입장인 수험생들만 울상 짓고 있다. 구체적인 일정 공지가 시험 몇 개월 전에야 이루어지다 보니 수험생들은 전년도 일정을 참고할 수밖에 없는데, 시험날짜가 매년 바뀌어 하루하루에 민감한 수험생들이 피해를 보는 것이다. 일정이 앞당겨지더라도 수험생들은 시험 담당 기관에 항의 전화를 하거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불만을 토로하는 것 외엔 별다른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몇 주가 아닌 몇 개월씩 일정이 앞당겨진 시험도 있다. 해양경찰청은 2018년 제1차 경찰공무원 채용 필기시험을 올해 12월 16일에 실시한다고 지난 9월 공지했다. 같은 시험이 올해 3월 11일에 치러졌으니 3개월이나 앞당겨진 셈. “시험이 너무 이르다”는 항의가 빗발치자 해양경찰청은 장기수험생이 많은 간부후보생 시험을 1월 20일로 연기했다. 그러나 함정요원, 해경학과 필기시험은 12월16일에 그대로 치러질 예정이다.
매년 달라지는 시험 날짜에 일부 수험생들은 “대학수학능력시험(11월 셋째 주 목요일)처럼 시험 일정을 고정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관계 당국은 현실적인 이유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공인회계사 1차 시험) 출제위원들이 시험 전 10일 정도 합숙을 해야 하는데, 25일에 1차 시험을 보면 합숙기간이 설 연휴와 겹친다”고 시험을 앞당긴 이유를 설명했다. 금융위는 또 수험생들의 불만에 대해 “시험 90일 전에 일정 공고를 하기 때문에 시험 날짜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해양경찰청 관계자는 “정부 방침에 따라 선발 인원이 예년보다 많아져 교육기간 등을 고려해 시험 일정을 앞당겼다”며 “조직 인원 상황에 따라 매년 시험 일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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