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은 강제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뜻한 태양 빛이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듯 문화 예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그러나 모든 예술이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관객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노래만 잘하고 춤만 잘 춘다고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다. 관객들이 어떤 부분에 숨을 죽이는지, 어떤 부분에서 크게 변화하기 원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훌륭한 대본을 바탕으로 무대 위에서 가장 적절하고 정확하게 속도와 강약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2011년 서울시뮤지컬단에서 진행한 뮤지컬 ‘투란도’에서 투란도역을 맡아 연기했다. 호랑이 연출가 소문났던 고(故) 김효경 선생이 연출을 했다. 매일 매일 살얼음판이었다. “거기서 왜 움직여요?” “왜 그쪽으로 가요?” “왜 일어서요?” “거길 왜 봐요?” “어떤 마음인데 그렇게 걸어요?” 등 배우들이 걸으면 걷는다고, 멈추면 멈춘다고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리고 배우들에게 클래식음악을 들으라, 발레공연을 보라, 명화 감상을 많이 하라는 등 여러 가지를 주문했다. 그런 예술적 훈련을 통해 극과 음악 그리고 동작의 기승전결을 이해하는 훈련을 하길 바랐던 것이다. 이를테면, 명화 감상은 그림 속의 구도를 공부해서 무대 위에서 배우가 움직이고 멈추는 위치가 정확한지 가늠하는데 도움이 된다.
나는 연출가의 요구를 죽기 살기로 메모했고 클래식 음악과 명화 감상을 하며 감각적으로 반응하는 훈련을 했다. 어느 날부턴가 조금씩 연출가의 의중을 깨닫기 시작했다. ‘아, 이래서 그렇게 움직여야 하는구나!’ ‘이때는 이 방향으로 가야하겠구나’ ‘이래서 이 호흡이 필요하구나’ 등. 그뿐이 아니었다. 배우로서 너무 어린 나이에 일본 극단 사계에서 맡았던 '아이다'의 암네리스 역을 떠올리며 '디즈니 연출가가 이런 음악의 변화 때문에 이런 호흡과 동작의 변화를 요구했구나' 같은, 과거에 품었던 여러 의문도 풀렸다.
하루는 세종문화회관 투란도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호랑이 연출이었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전화를 받았다. 교수님이 유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100점이야!”
눈앞에 반짝이와 꽃가루가 날리는 것 같았다. 교수님은 내가 관객들의 마음을 잘 읽고 꼭 맞게 움직였다고 칭찬했다. 칭찬을 듣고 울컥했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무대 위의 배우들이 관객의 심리를 알면 배우와 관객이 함께 극을 만들어갈 수 있다. 다만 배우는 그 느낌을 표현하고 한쪽은 이를 적극적으로 감상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세계가 열광하는 우리나라 K-pop 아이돌의 무대를 보면, 노래와 춤이 뛰어난 건 말할 것도 없고 멋진 퍼포먼스가 가득하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런 조건들을 다 만족할 수 있게 기가 막히게 만들어 낸다. 그들은 관객이 환호할 타이밍에 맞춰 노래와 춤의 고조를 계산하고 폭죽이나 무대 장치까지 배치한다. 거기에 가수의 재능과 열정이 더해진다. 가수들은 관객이 원하는 타이밍에 객석으로 성큼 다가서고 때론 객석으로 뛰어든다. 이 모든 것들이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한 그들의 계산이고 노력이다.
이 대목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나훈아다. 컴백 공연이 아이돌 공연 못잖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들었다. 이유는 명백하다. 그의 공연이 관객에 마음을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밤무대에서 노래하던 시절 꼭 쪽박을 소품으로 준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남자에 대한 원망이나 한을 담은 노래 클라이맥스에서 박을 깨서 여성관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는 거였다. 관객의 심리를 깊이 이해하고 정확한 타이밍에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공연자로서의 능력을 보여주는 일화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관객의 마음을 이해하고 읽어내는 노력이 바로 무대를 만드는 예인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욱 치밀한 계산과 열정으로 감동적인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공연에 온 사람들이 세상 다 잊고 짧은 시간이나마 정신적으로 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번 컴백 공연은 중국에 있었던 까닭에 티켓을 구하는데 실패했지만, 다음 공연에는 꼭 맨 앞자리에 앉아서 나훈아의 카리스마를 확인하고 싶다. 그의 말 한 마디, 퍼포먼스 하나하나가 단독 공연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범례가 되리라 생각한다.
홍본영 뮤지컬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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