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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협 보따리 챙긴 트럼프, 대등 관계 과시한 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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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협 보따리 챙긴 트럼프, 대등 관계 과시한 시진핑

입력
2017.11.09 19:2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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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정치 입지 좁아진 트럼프

美 기업 수출 길 넓혀 성과

시 주석, 美와 무역 마찰 부담

‘차이나머니’ 풀어 관계 재정립

틸러슨 “제재 北 경제 압력 신호”

‘독자 제재 반대’ 中 입장 존중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양국 기업인 대표 회담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양국 기업인 대표 회담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북한 핵 문제 해법과 무역 불균형 문제를 두고 갈등해 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정작 머리를 맞댄 자리에선 ‘윈윈’하는 길을 택했다. 이견을 부각시키지 않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눈에 보이는 경제협력 보따리를 챙겼고, 집권 2기를 시작한 시 주석은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를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중국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9일 개최된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 간 정상회담은 사실 꼼꼼히 따져보면 원론적이고 상식적인 수준 이상의 합의는 없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선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양국 간 협력을 강화하자는 정도였고, 무역 불균형 문제도 대규모 경협을 체결하는 정도에서 봉합하는 데 그쳤다. 구속력이 없는 언론발표문을 각자가 발표하는 형식이었던 게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신 양국은 서로가 원하는 바를 얻었다. ‘러시아 스캔들’로 국내에서 정치적 입지가 좁아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끌어내고 미국 기업들의 수출길을 넓힘으로써 가시적인 성과를 내세울 수 있게 됐다. ‘1인 천하’를 구축하면서 2050년 세계 최강국을 국가적 목표로 내건 시 주석 역시 ‘차이나 머니’를 들이 밀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요 2개국(G2)으로서의 입지를 과시할 수 있게 됐다.

최대 현안으로 꼽혀온 북핵 문제를 두고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 간에 애초부터 시각 차이가 분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 책임론’을 주장하며 강력한 대북제재를 주장해 왔고, 시 주석은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자는 입장이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대북 결의를 전면적으로 이행하자는 것은 독자제재를 반대하는 중국의 입장을 존중한 결과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을 수행 중인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정상회담 후 브리핑에서 “유엔 등의 제재가 북한 내부 경제와 일부 주민, 심지어 군부에까지 어떤 압력을 만들어 내는 신호가 보이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제재 효과를 긍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더불어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기로 했다는 대목은 핵을 가진 북한과는 대화할 수 없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부분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정도임을 감안하면 한반도 비핵화와 함께 소통ㆍ협력 강화 이상의 합의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와 한반도 정세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양국 정상이 이견을 부각시키지 않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 회담에서 두 정상 간에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시적인 대북 원유공급 중단과 중국 내 북한 노동자 추방을 요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경우 시 주석도 독자제재 반대와 함께 쌍중단(雙中斷ㆍ북한 핵ㆍ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및 쌍궤병행(雙軌竝行ㆍ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 의지를 고수했을 가능성이 높다. 외부에 공개된 자리에서 두 정상이 이 같은 내용을 언급하지 않은 건 갈등ㆍ대립이 아닌 협력ㆍ소통의 모양새가 양측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란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는 무역 불균형 문제에서 양측이 이룬 합의를 보면 좀 더 분명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갈등에 대해선 아예 한발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현재의 무역관계는 편향됐고 불공정하다”고 비판하면서도 그 책임을 중국이 아니라 관련 협정을 맺은 과거 행정부에 돌렸다. 미국과의 무역ㆍ통상 갈등의 확대를 부담스러워해 온 시 주석이 가장 듣고 싶은 얘기를 한 셈이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무려 2,500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경협 성과를 거뒀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인의 일자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힌 건 경협이 이번 방중의 최대 성과물이라는 인식의 반영이다.

이에 비해 시 주석은 ‘미중관계 재정립’을 과시하는 데 공을 들였다. 무역 갈등과 관련해선 상호 호혜적인 관계와 대화를 강조하는 선에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에게 아낌없이 주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러면서 시 주석이 내세운 건 제19차 공산당대회에서 공표한 ‘신형 국제관계’였다. 그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향후 양국 간 대국관계의 협력 방향도 결정했다”면서 “중미 간 상호 협력은 양국의 근본적인 이익과 세계의 기대에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미중관계가 ‘강대국 대 부상국’이 아니라 대등한 위치에서 전 세계의 주도권을 공유할 것임을 부각시킨 것이다. 시 주석 입장에선 양안(兩岸ㆍ중국과 대만)관계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하며 고수할 것”이라는 답변을 받아낸 것 역시 대등한 미중관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길 만하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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