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나오면 아이는 누가 돌봐요”
“형광등은 당연히 남자가 갈아야”
500여명 경험담 등 열띤 토론
젠더 감수성ㆍ성평등 의식 높이기
‘서로에게 말걸기’ 캠페인 진행
“개그 프로그램에서 출연하던 코너가 갑자기 폐지됐을 때 눈물이 나더라고요. PD님은 ‘남자 새끼가 그까짓 일에 왜 우냐’고 핀잔을 줬어요.” (개그맨 황영진씨)
“새벽 강의를 나가면 사람들이 물어요. 애기는 누가 돌보는지를요. 남자 강사한테는 그런 질문 안하잖아요?” (김지윤 좋은연애연구소장)
성 편견에 사로잡힌 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남녀 모두를 짓누른다. 8일 저녁 서울 광진구 건국대 새천년관 대공연장. 20,30대 젊은 남녀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여성가족부의 토크콘서트 ‘대한민국 남녀 서로에게 말 걸기’에서는 주변에 편재한 성차별 경험담이 쏟아져 나왔다. 함께 털어놓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는 자리였다.
방송인 타일러 라쉬는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비서로 일할 때 나이 든 외교관이 ‘왜 남자가 비서 자리에 앉아 있느냐’며 의아해 했는데 알고 보니 여성 비서에게 커피 대접을 받는 게 익숙해서 벌어진 일이었다”이라며 “한국에서 비서직에 지원하고 싶은 남자는 1차 전형에서 이력서 사진을 보고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개그맨 황영진씨는 “‘남자는 숟가락 하나만 들 힘이 있으면 성욕이 있다’는 말을 우스개로 쓰는데, 반대로 여성이 설거지할 힘만 있으면 성욕이 있다고 하면 괜찮겠느냐”며 “젠더 감수성은 성별을 떠나 상대의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야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방송이나 언론의 보도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말고, 성평등 관점에서 비틀어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지윤 소장은 “데이트폭력 사건을 보도하며 ‘도 넘은 데이트폭력’이라 지칭하는 것은 파트너를 살짝 미는 것은 괜찮고, 세게 때리는 건 안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정현백 장관을 비롯한 4명의 패널들은 젊은 세대에게 성별 고정관념에 갇히지 말 것을 주문했다. 정 장관은 “독일 유학 때 한국 남성들 중 요리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해 학교 식당이 문을 닫는 주말이면 계란을 20개 삶아 놓고 한 끼에 3개씩 먹다가 버티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며 “가사노동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인간이 되기 위한 과정이지, 여성만이 경험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고 조언했다. 김지윤 소장은 “남녀간 1대1 관계가 형성되는 연애부터 고정된 성 역할 대신 합리성을 바탕으로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거운 짐은 항상 남성이 들어야 한다는 등의 고정 관념이 아니라 덜 피곤한 사람,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이 하면 된다는 것.
이날 토크콘서트에 참여한 한 여성 대학생은 “술자리에서 여자 후배가 따라주는 술이 더 맛있다는 말을 종종 듣는데 기분이 나쁘다”고, 남성 대학생도 “아동복지학과에 다닐 때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형광등은 남자가 갈라’는 말을 들어 불합리하다고 느꼈다”고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여가부는 앞으로 젠더 감수성과 성평등 의식을 높이는 ‘말걸기 캠페인’으로 사회적 토론과 합의를 이끌어 낼 계획이다. 정 장관은 “남성과 여성 모두가 행복한 사회는 타인이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며 “개개인이 문제 제기의 주체가 돼 사회적 토론과 합의를 만들어 내자”고 당부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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