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S 정상회담 앞서 기선잡기
IS 소탕ㆍ경제 협력이 주제 될 듯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인권 문제가 제기될 경우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말해줄 것”이라고 8일 밝혔다. 오는 13~14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는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와 양자회담을 앞두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기선잡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일간 필리핀스타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베트남으로 출국하기 직전 미국과의 정상회담에 대한 기자의 질문을 받고 이같이 답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인권 문제를 제기하면) 날 좀 내버려두라고 할 것”이라며 “내 나라를 키우고 건강하게 돌보는 것은 당신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고 말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트럼프 대통령이 필리핀의 마약 단속 과정에서 벌어지는 초법적 처형 중단을 분명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국제앰네스티의 한 관계자는 “양국 관계가 필리핀에서 마약과의 전쟁으로 벌어지는 참사를 외면하는 변명거리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과 필리핀은 전통 우방이자 동맹국. 끈끈한 유대를 과시하며 동아시아로의 중국 진출을 견제해왔다. 하지만 작년 6월 두테르테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친미 외교노선에서 탈피, 친중 노선을 걸으면서 냉기류가 형성됐다. 특히 전임 미 행정부가 필리핀의 마약 유혈 소탕과 관련 인권 유린을 비판했다가 두테르테 대통령이 ‘개XX’라는 욕설까지 하면서 관계는 악화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그의 이런 막말 때문에 ‘아시아의 트럼프’로 불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EAS와 양자회담이 양국 관계의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군사적 패권 확장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과 필리핀의 합동 군사훈련을 중단한 반면, 중국과는 경제ㆍ군사협력에 적극적인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필리핀의 인권 문제를 거론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대신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세력 소탕 지원 확대와 경제 협력 등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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