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 싸다는 이유로 우후죽순
2년전 화재후 전국 18만가구 급증
대피 힘든 필로티 구조가 88%
화재 취약 ‘스티로폼 외벽’ 30%
“건축비를 아끼기 위해 지하 주차장을 만들지 않고 1층을 주차장으로 쓸 수 있는 필로티 구조로 건물을 짓고 있습니다.”
6일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동 대봉그린아파트 인근 한 도시형생활주택 공사장에서 만난 현장 관계자는 필로티 구조를 택한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도시형생활주택은 전세난과 늘어나는 1, 2인 가구 주거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2009년 도입한 것으로 전용면적 85㎡ 이하, 300세대 미만으로 도시지역에서만 지을 수 있다.
필로티 구조는 1층 주차장 안쪽에 입구가 있는 경우가 많아 1층 화재 시 대피나 진입이 어렵고, 지진 때 붕괴 위험도 일반 주택보다 크다. 2015년 1월 5명이 숨지고 129명이 다친 원룸형 도시형생활주택 대봉그린아파트 화재사고도 이런 필로티 구조가 화를 키웠다.
인근 주민은 “건축업자들이 이런 까닭을 모를 리 없지만 건축비가 싸다는 이유로 주변에 필로티 구조의 도시형생활주택을 짓는 곳이 우후죽순으로 늘고 있다”며 “대봉그린아파트 인근 현장에도 5곳이나 된다”고 말했다.
7일 인천 남동구 구월동 인천시청 인근에는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필로티 구조의 도시형생활주택이 밀집해 있었다. 건물 입구가 대부분 1층 주차장 안 쪽에 있어 주민들은 건물 하중을 견디는 기둥과 빼곡하게 서 있는 차량을 통과해 건물로 드나들어야 했다.
도시형생활주택이 의정부 화재사고 이후에도 줄어들기는커녕 급증하고 있다. 더욱이 대다수 주택이 화재와 지진에 취약한 필로티 구조로 지어지고 있어 ‘제2의 의정부 화재사고’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8일 국토교통부와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국민의당 윤영일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도시형생활주택은 2014년 12월 24만1,851세대에서 올 6월 42만2,800세대로 2년 반 만에 74.8%(18만949세대)가 늘었다. 원룸형이 24만4,218세대로 가장 많았고 단지형다세대 15만1,859세대, 단지형연립 2만6,587세대 등 순이었다. 수도권(서울 인천 경기)은 28만542세대로 전체의 66.3%를 차지했다.
2015년 1~3월 진행한 도시형생활주택 안전실태 결과를 보면 필로티 구조 비중은 88.0%에 이른다. 인접한 대지 경계선과 거리가 1m 미만이거나 진입도로 폭이 6m가 안 되는 곳도 각각 17.9%, 26.6%였다.
실제 대봉그린아파트 인근에 건축중인 도시형생활주택은 옆 건물과 불과 수 미터 간격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어 재해가 발생할 경우 대형사고마저 우려된다. 일부 공사장에는 단열재로 쓸 스티로폼 자재가 바닥에 널려 있었다. 대봉그린아파트 앞 골목길은 불법 주ㆍ정차된 차량들로 제구실을 못했다. 화재사고 당시에도 아무렇게나 세운 차량 때문에 소방차가 제때 진입하지 못해 인명 피해가 컸지만 교훈은 없었다.
건물 외벽에 스티로폼을 붙이고 시멘트를 덧바르는 드라이비트 공법 등 불에 취약한 외벽마감재를 쓴 비중도 30.0%에 달했다. 의정부 화재 때 불쏘시개 역할을 한 드라이비트는 시공비가 저렴하고 공사기간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외벽을 타고 불이 빠르게 확산되고 유독가스를 내뿜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윤 의원은 “국토부가 의정부 화재 이후 예방을 위한 권고사항을 만들어 지자체에 내려 보냈지만 인천시 등은 추가 조사나 관련 대책 마련을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지적했다.
정기신 세명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도시형생활주택은 건물간 간격이나 주차장 설치 기준이 일반공동주택보다 완화된 기준을 적용 받아 화재에 취약할 수 밖에 없어 소방이나 안전을 따질 경우 안 짓는 게 맞다”라며 “다만 아파트 등만으로 단독가구 주거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는 만큼 정부가 정책적으로 판단해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