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공언에
총수 지배력 강화 활용 유무 등
내달부터 운영실태 전수조사
현행법상 제재 규정 불명확해
사익편취 조항 적용 어렵지만
관련법 개정 위한 포석 될수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재벌개혁 ‘1호’ 조치로 대기업 공익재단 전수조사 카드를 꺼냈지만 현행법상 관련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실질적 제재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표현대로 ‘재벌들을 혼내’주기 위해서는 법 개정 등 제도 개선부터 뒷받침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8일 공정위에 따르면 기업집단국은 다음 달부터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재단의 전반적인 운영실태(자산ㆍ수익구조ㆍ사업현황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다. 자산 10조원 이상 대기업집단 20곳 소속 39개 공익재단(79개 계열사 지분 보유)이 대상이 될 전망이다. 앞서 지난 2일 김 위원장은 삼성 현대차 등 5대 그룹 전문경영인 간담회에서 공익재단 전수조사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당시 김 위원장은 공익재단 제재 시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지원행위 금지’나 ‘총수일가 사익편취 금지’(일감 몰아주기) 조항을 적용하겠다고 시사했다. 공익재단의 당초 취지와 달리 총수 일가 지배력 강화의 통로로 활용되고 있는 지를 집중 살펴보겠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사장인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은 삼성전자 1대 주주인 삼성생명에 대해 각각 2.18%, 4.68%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공익재단을 매개로 이 부회장이 그룹 지배력을 강화할 수도 있는 셈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공언은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현행법상 ‘계열사 주식 공익재단 출자(기부)→상속ㆍ증여세 면제 및 의결권 행사→총수일가 지배력 강화’의 고리를 제재할 규정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호영 한양대 교수는 “부당지원 조항이나 사익편취 조항 모두 특정 ‘거래’를 통해 이익이 계열사나 총수 일가로 이전된 점이 입증돼야 한다”며 “대기업과 공익재단 간 유일한 거래는 계열사 주식 출자뿐인데, 이를 토대로 제재를 가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봉의 서울대 교수도 “사익편취 조항은 회사(계열사)간 거래를 대상으로 하는데, 공익재단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더구나 사익편취 조항은 적용 대상이 되는 거래 유형을 한정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이 조항은 대기업 계열사가 총수 일가 지분이 30% 이상인 계열사에 이익을 부당 이전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구체적인 유형으로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 ▦사업기회 제공 ▦일감 몰아주기 등을 제시하고 있다. 한 공정거래법 전문 변호사는 “이들 유형 중 공익재단을 활용한 ‘지배력 강화’와 딱 들어맞는 게 없다”고 꼬집었다. 조성국 중앙대 교수는 “법 적용이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사익편취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시장가격’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를 했다는 점 등을 공정위가 입증해야 하는데, 그게 실무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전수조사 과정에서 다른 형태의 부당 행위가 드러날 수도 있다. 실제로 경제개혁연대는 작년 1월 금호그룹 공익재단인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과 죽호학원이 100%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가 대부분 그룹 일감을 통해 수익을 거두고 있는데도 공익재단이란 이유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적용 받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번 공익재단 전수조사가 제도 개선을 위한 ‘포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공익재단이 총수일가 지배력 강화에 악용된 사실이 드러나면 관련법 개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에는 공익재단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박영선ㆍ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명의로 발의돼 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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