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중국 책임론’ 요구하지만
中, 북핵 의제 삼기 부담되는 상황
한반도 비핵화 등 기조 이어갈 듯
中 “상호 호혜적 개방” 명분으로
‘무역적자 축소’ 美 관심사 겨냥
대규모 투자ㆍ경제협력 내밀 전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9일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 문제와 무역ㆍ통상현안을 두고 사실상의 ‘제로섬 게임’을 벌여야 한다. 첫 아시아 순방에서 의미 있는 전리품이 필요한 트럼프 대통령과 집권 2기 초입에서 ‘신형 대국 관계’를 상징할 만한 명시적인 합의가 필요한 시 주석이 어디에서 접점을 만들어낼지 주목된다.
미중 정상회담의 최대 현안 중 하나인 북핵 문제 해법 논의에선 공수가 비교적 뚜렷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진작부터 ‘중국 책임론’을 제기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근래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평가하면서도 여전히 중국에 더 강력한 대북제재를 요구하고 있다. 미 행정부에선 명시적으로 원유 금수 조치에 나설 것을 압박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중국이 내놓은 모범답안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의 철저한 이행과 특정 국가의 독자 제재 반대였다. 시 주석의 답변도 이 같은 기조에서 달라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사실 중국 입장에선 북핵 문제가 핵심 의제가 되는 것 자체가 부담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을 앞두고 북한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도 불필요한 논란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이 때문에 북핵 문제와 관련해선 북핵 불용과 한반도 비핵화 등 원칙적인 합의 이상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북핵 문제가 가장 어려운 의제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중 간 통상현안과 관련해선 현실적인 합의들이 도출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적극적으로 성과를 내려는 현안이고, 시장 개방 확대를 약속한 시 주석도 양측이 윈윈하는 무역관계를 구축하는 게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다. 물론 초점은 다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규모 무역적자 축소와 미국 기업들의 중국시장 진출 활성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데 비해 시 주석은 상호 호혜적인 시장개방을 명분으로 전략물자의 수입 확대를 통한 무역수지 개선을 주장할 공산이 크다.
이 때문에 명시적인 합의는 중국 측이 대규모 투자ㆍ경제협력 보따리를 푸는 방식이 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 방중 첫 날인 8일에만 미국과 생명과학ㆍ항공 등의 분야에서 90억달러(약 10조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중국 국영석유회사인 시노펙은 미국 남부의 송유관 건설사업 참여를 선언할 예정이고,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상하이(上海) 공장 설립 건도 매듭짓게 될 전망이다. 이는 40여명의 기업인을 대동한 트럼프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주는 측면도 있다.
시 주석 측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최우선적으로 듣고 싶은 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명시적인 동의다. 이는 시 주석이 강조한 신형 대국관계의 출발점이다. 미국 전문가인 류웨이둥(劉衛東)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은 “미국은 실질적인 문제를 먼저 건드린 뒤 전략적인 문제로 접근하려 하지만 중국은 구체적인 논의 전에 미국이 중미관계를 분명하게 정의해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핵심 의제들에 대한 접근법이 다른 만큼 국제질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합의가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SCMP는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의제가 서로 다르다”고 진단했고, 하와이 아시아태평양센터의 알렉산더 부빙 연구원은 “향후 미중관계에선 갈등이 커지는 동시에 대화 또한 많아지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흉내를 낼까 하는 우려가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스캔들로 정치적 입지가 약화한 트럼프 대통령이 ‘1인 천하’를 구축한 시 주석에 비해 성과에 대한 조급함이 클 것이라는 게 이유다. 닉슨 전 대통령이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개선하면서 데탕트(긴장완화)를 추구한 ‘닉슨 독트린’이 동맹국들을 혼란에 빠뜨렸던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 정책방향과 모순되는 합의에 응할 가능성을 경계한 것이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