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황제급 예우’로 맞이했다. 수도 베이징(北京)의 심장부인 자금성(紫禁城)을 통째로 내주고 황제가 걷던 길을 따라 직접 안내도 했다. 자금성 내에서의 만찬ㆍ연회도 건국 이래 처음이었다. 중국 매체들조차 ‘이례적 환대’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이 2박 3일간의 국빈방문을 위해 중국 베이징을 찾은 8일 자금성은 그야말로 ‘황제급 접대’를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첫날 일정을 위해 아예 이날 하루 임시휴관했고, 양국 정상의 ‘차(茶) 회동’이 예정된 보온루(寶蘊樓)와 만찬ㆍ연회가 열리는 건복궁(建福宮) 주변은 일주일 전부터 환경정비와 함께 경비가 대폭 강화됐다. 중국 정부는 자금성 정기휴관일인 지난 6일 연회 일정을 포함해 트럼프 대통령 도착 직후부터 시 주석과 내내 함께 할 동선에 맞춘 행사 예행연습을 무려 12시간에 걸쳐 진행했다.
자금성에서 진행된 차 회동과 경내 관람, 연회 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황제급 예우’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시 주석은 펑리위안(彭麗媛) 여사와 트럼프 대통령 부부를 맞이한 뒤 보온루로 자리를 옮겨 윈난(雲南)성에서 재배한 보이차를 비롯해 내로라하는 10여종의 차를 내왔다.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지난 4월 마라라고에서 우리를 열정적으로 환대해준 것에 고마움을 표한다”며 “중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고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트럼프 대통령은 태블릿PC에 담긴 외손녀 아라벨라가 중국어로 노래를 부르고 삼자경과 중국 옛 시를 읊는 동영상을 시 주석 부부에게 보여줬다. 시 주석은 아라벨라의 중국어 실력을 ‘A+’라고 칭찬한 뒤 “아라벨라가 이미 중국에서 유명인사”라고 말했다.
30여분간의 차담 후엔 본격적인 자금성 참관이 진행됐다. 양국 정상 부부는 황제의 관료 접견 장소였던 태화전(太和殿)에서 기념촬영을 한 뒤 중화전(中和殿)ㆍ보화전(保和殿) 등을 차례로 둘러봤다. 시 주석은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해온 트럼프 대통령을 의식한 듯 이들 3개 전각에 공통으로 포함된 화(和)라는 글자를 통해 중국의 전통문화를 설명했다.
특히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을 과거 황제만이 다니던 길인 중축선을 따라 안내함으로써 상징적인 의미를 더했고 자금성의 역사와 건축ㆍ문화 등을 직접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의 설명에 연신 감탄했다. 양국 정상 부부는 이어 창음각(暢音閣)으로 자리를 옮겨 중국 전통 연극인 경극을 감상했다. 어린 학생들의 공연이 끝나자 트럼프 대통령은 다소 상기된 얼굴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만찬ㆍ연회가 진행된 건복궁은 60년간 재위하며 청나라를 세계 최강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건륭제의 처소였다. 일반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된 곳으로 2008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부부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이후 미국 측 인사가 들른 적이 없다. 자금성 경내 산책까지만 허락됐던 전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대접을 받은 것이다. 더욱이 중국 정부가 자금성 경내에서 외국 수반에게 만찬ㆍ연회를 베푸는 건 1949년 신중국 건국 후 처음이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은 중국이 제19차 공산당대회를 감안해 전략적으로 배치한 측면이 크다. ‘1인 천하’를 구축한 시 주석이 당대회 이후 중국을 처음 찾는 외국 정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정해놓고 미중 정상 간 자금성 연회 일정을 통해 주요 2개국(G2)로서의 위상을 부각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두 정상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벤트를 준비하면서 공개적으로 ‘국빈방문+알파’를 강조한 이유다.
융숭한 접대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항 도착 때부터 시작됐다. 정치국원 승진으로 위상이 한층 높아진 양제츠(楊潔篪)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이날 오후 2시40분(현지시간) 전용기 편으로 베이징 서우두(首都)공항에 도착한 트럼프 대통령을 영접했다. 중국 측은 특히 전용기 트랩에서부터 레드카펫을 깔아 지난해 G20 정상회의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 홀대 논란이 벌어졌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중국 정부는 공항에서부터 시내로 통하는 도로 전체를 통제했고, 자금성과 연결된 장안대로를 비롯해 시내 주요 도로마다 보안요원을 배치하는 등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자금성 주변의 일부 학교에는 ‘중요한 국무활동’을 이유로 학생들을 일찍 돌려보내도록 지시했고, 시내 중심가 고층빌딩들의 일부 출입구 통행을 금지하거나 사무실 창문을 열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숙소인 베이징 세인트 레지스호텔도 3중으로 보안ㆍ안전검사를 실시하고 주변에는 24시간 무장경찰을 배치했다.
베이징 공항에서 곧바로 자금성으로 향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만찬ㆍ연회가 마무리된 뒤 오후 7시가 조금 넘어 숙소로 돌아갔다. 이로써 ‘시황제’가 베푼 황제 접대도 4시간 가까이 지나 마무리됐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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