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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정의 독사만필(讀史漫筆)] 통신사(通信使)의 교훈

입력
2017.11.08 14:39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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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유네스코는 통신사 관련 유물유적을 ‘세계의 기억’(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했다. 한국 부산문화재단과 일본 조선통신사연지연락협의회(朝鮮通信使緣地連絡協議會)의 공동신청을 수용한 것이다. 두 단체는 5년 전부터 이 사업을 함께 추진해 왔다. 나는 한국 측 공동추진위원장의 한 사람으로서 이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을 자축하며 보람을 느낀다.

지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통신사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조선이 일본 도쿠가와(德川) 막부(幕府)에 파견한 외교사절이다. 조선은 임진왜란으로 단절된 양국 외교를 재개하려는 일본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여 열두 번 사절을 파견했다. 주로 쇼군(將軍) 계승 축하 명목을 띤 통신사는 국서(國書)와 예물을 교환하는 대등한 정상외교였다. 한 번에 500여명의 사절단이 6개월에서 1년 가까이 일본의 요충지를 왕래했으니 인간과 문화의 교류도 왕성했다. 한국과 일본의 각처에는 그와 관련된 유물유적이 많다. 그 중에서 111종 333점이 이번에 ‘세계의 기억’으로 등재되었다.

통신사 유적유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됨으로써 통신사에 대한 관심과 평가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에 통신사가 현재의 한국외교 내지 한일관계에 주는 시사(示唆)와 교훈을 몇 가지 열거해 보겠다.

첫째, 한국과 일본은 통신사로부터 국익과 국위(國威)를 지키면서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정신과 자세를 배워야 한다. 조선이나 도쿠가와 막부는 상대방보다 국격(國格)이 우월하고 문화가 선진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는 국왕의 호칭, 서계(書契)의 작성, 예물의 교환, 여정의 설계 등에서 서로 의견을 조율하면서 상대방이 난처한 처지에 몰리지 않도록 배려했다.

둘째, 조선과 도쿠가와 막부는 자국의 관행이나 체면을 중시하면서도 상대방을 최상으로 대접하려는 정신과 자세를 견지했다. 통신사의 여정에서 베푼 창화(唱話)와 시문 교환, 연도주민에 대한 교육과 계몽, 숙소와 음식의 제공, 연희(演戲)와 공연 등에서는 나라의 체면을 과시하려는 애국심과 더불어 상대방을 대접하려는 예절이 묻어났다.

셋째, 무력행사보다 평화교류를 외교전략으로 선택한 조선과 도쿠가와막부의 혜안이다. 1811년 이후에도 양국은 통신사 외교를 재개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여건이 맞지 않아 실현을 보지 못한 가운데 강화도사건(1875년)을 맞았다. 그 후 불행한 한일관계의 전개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이 점을 감안하면 통신사가 양호한 한일관계를 유지하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교류의 소중함은 전쟁을 겪음으로써 확실히 깨달을 수 있다. 통신사는 한일의 평화는 물론 동아시아의 안정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넷째, 풀뿌리 교류의 지혜다. 통신사가 왕래한 부산, 쓰시마 등지에서는 다양한 교류가 이루어졌다. 일행은 몇 십 년 만에 다시 만나 회포를 풀거나, 덧없이 늙어가는 신세를 서로 위로했다. 공연과 창화도 즐겼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마음을 나누며 사귀었던 것이다. 그런 사례는 오늘날 풀뿌리 교류 내지 공공외교(公共外交)의 선구라고 할 만하다.

그렇지만 통신사의 여러 시사와 교훈 중에서 무엇보다도 값진 것은 ‘평화의 사절’이었다는 점이다. 거듭 말하지만 통신사 외교가 작동했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은 270년 이상 평화를 유지했다. 세계사에서 국경을 맞댄 나라끼리 이처럼 오랜 세월 전쟁 없이 평화롭게 교류한 예는 없다. 같은 시기에 전쟁으로 지샌 유럽의 역사와 비교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요즈음처럼 세계각처에서 무력 충돌과 테러가 끊이지 않고 한반도의 안보와 안녕이 위중(危重)한 상황에서 통신사의 가치와 효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과 일본의 유지들이 통신사 유물유적을 유네스코 ‘세계의 기억’에 등재시키려고 노력한 것은 통신사가 내포한 위와 같은 의의를 현대에 되살리려는 사명감 때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나는 이 점을 마음 든든하게 생각하고 그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미력하나마 여기에 힘을 보탠 것을 감사하게 여긴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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