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 ‘침묵’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편견을 가진다. ‘돈만 아는 사람은 나쁜 사람일 거야,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거야’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영화 ‘침묵’의 임태산(최민식 분)은 이 점을 이용한다. 사랑하는 애인 유나(이하늬 분)가 죽고 용의자로 하나뿐인 딸(이수경 분)이 몰리자 그는 나쁜 사람이라는 데 한 치의 의심도 받지 않는 자신의 이미지를 이용해 스스로 범인이 된다. 덕분에 ‘침묵’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끝내 진짜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 밀려오는 허탈감에 빠지게 된다.
최민식은 극중 임태산 역을 맡아 그의 복잡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애썼다. 그는 자신을 범인으로 만들기 위해 쇼를 하고, 관객뿐만 아니라 극중 인물 모두를 속인다. 이에 대해 최민식은 “페이크가 중요한 영화다. 그 중심 안에 임태산이 있다. 그동안 많은 난관이 있었겠지만 이런 고통은 임태산도 처음이었을 것이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정신이 번쩍 든 거다. 제대로 가정을 이루고 싶은 찰나에 사건이 벌어지는데, 그 고통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다”라고 운을 뗐다.
초반 아버지 임태산은 강압적이기도 하다. 딸이 의견을 내면 먼저 화를 내고, 성인이 된 딸을 여전히 “아직 애야”라고 표현한다. 이랬던 아버지는 결국 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전부를 기꺼이 내던지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든다. 부성애라는 요소가 많은 영화에서 진부한 소재로 쓰이기도 하지만, ‘침묵’에서는 반전으로 이용되며 신선함을 준다.
최민식은 “만약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이불 뒤집어쓰고 누울지도 모른다.(웃음) 임태산은 다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을 계획한다. 딸을 살인자로 살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후엔 바로 행동으로 옮긴다. 그 용의주도함이 영화 전반적으로 보인다. 양면성이 있는 인물로 봤다”라고 말했다.
이어 최민식은 임태산의 행동을 “자폭함으로서 자신을 회복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나로 비롯된 비극이니까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게 참 다행이지 않나. 내가 임태산에게 끌리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에게 죄를 전가시켰다면 회복이 아니다. 삐뚤어진 자식 사랑인데, 우리는 무너져버린다. ‘침묵’의 영어 제목이 ‘하트 블랙엔드(Heart Blackened)’인데, ‘마음이 무너져 내리다’라는 뜻이다. 자기 인생의 스위치를 꺼버릴 만큼 과감한 결단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밑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참회 때문일 것이다”라고 설명하면서 “찍으면서 흰머리가 더 늘어났다”고 웃었다.
최민식은 그동안 ‘센’ 캐릭터로 주목 받았다. 그의 연기와 카리스마가 주는 강한 인상도 한 몫 하겠지만 실제 강한 캐릭터를 많이 맡았다. 독보적인 연기력 때문에 대체할 수 없는 캐스팅이기도 하겠지만, 분명 최민식의 취향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최민식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라고 말했으나 ‘악마를 보았다’ ‘해피엔드’ ‘루시’ 등 몇 개만 꼽아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들이다. 이에 최민식은 “분명 그런 역할에 끌려서 했을 것이다. 짐승에 가까운 극한의 인간을 표현하고 싶었다. ‘루시’는 경험 삼아 한 거다. 할리우드 진출을 위해 한 것은 아니고, 멀리서 온데다가 한국말로 해도 된다고 하길래 ‘합시다’ 했다. 만약 또 강한 캐릭터를 하게 된다면 ‘악마를 보았다’처럼 완전히 미친 사람 말고(웃음), ‘양들의 침묵’ 한니발 박사처럼 말 한마디로 소름이 쫙 생기는 인물을 맡고 싶다. 그걸로 잔인한 건 끝내야지.(웃음) 기괴한 캐릭터 소화한다면 또 다른 맛을 내야 할 것이다. 나는 편식하고 싶진 않다”라고 말했다.
‘침묵’에서 역시 그는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를 소화했지만, 초반 이하늬와의 멜로 감성도 진하게 표현했다. 강한 캐릭터는 많이 해봤지만 오히려 로맨스는 ‘해피엔드’ ‘파이란’ 이후 처음이다. 완전한 멜로 장르를 하게 될 가능성에 대해 최민식은 “그건 희망 사항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나를 데리고 풀타임 멜로를 찍을 감독이 있을까.(웃음) ‘파이란’도 한 번 마주치고 따뜻한 밥 먹는 게 전부다”라며 웃었다.
그는 특별한 장르보다 기본이 되는 ‘드라마’가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민식은 “지금은 드라마가 고프다. 술이 고픈 영화를 하고 싶다. 내가 취해서 할 수 있는 것 말이다. 내가 감동 받고, 오래 잔상이 남고, 끙끙 앓았던 영화는 드라마였던 것 같다”라며 “늙은 아비와 그 할아비의 이야기, 또는 50대 중후반의 남성들 이야기 같은 건 어떨까. 추접스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소년처럼 순수할 때도 있고. 낚시터에서 두 명의 중년이 별 얘기를 다하다가 끝날 때는 전화번호도 주고받지 않고 어색하게 헤어지는 거다. 내 나이 대 할 수 있는 내 얘기를 하고 싶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이주희 기자 lee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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