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복숭아를 먹고 심하게 앓은 적이 있었다. 외할머니 댁에서였다. 복통 구토 발열 두드러기. 식중독인지 알레르기인지, 복숭아 때문이지 다른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앓는 나보다도 먼저 죽을 것 같은 사람은 할머니였다. 왜 아니겠는가. 방학이라고 내려와 지내는 손녀딸이 앓아 누웠는데. 할머니는 나를 들쳐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대신 당신만의 비법으로 나를 치료했다. 당신이 믿고 있는 만병통치약 참기름으로. 할머니가 직접 기르고 털어낸 참깨를, 고르고 씻어 말려 방앗간에 꼬박 지켜 서서 짜낸, 바로 그 참기름으로.
그날 나는 홀딱 벗겨진 채 기름칠을 당했다. 싫다거나 하지 말라거나 반항하지 못했다. 당신이 얼마나 애지중지 아껴먹는 참기름인지 알아서 그랬는지, 할머니 입에서 흘러나오는 주문인지 기도인지 모를 웅얼거림에 기가 눌려서였는지, 누가 붙잡아 맨 것도 아닌데 그냥 두 팔을 쭉 뻗은 채 누워 참기름 냄새를 맡았다. 나는 야무지게 말아놓은 김밥 같았다. 아니면 그 속에 든 시금치나물이거나. 어쨌거나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두드러기가 보이지 않았다. 그걸로 할머니의 참기름은 입지가 강화되었다. 입술이 부르트거나 상처가 났을 때 두통이 있을 때에도 참기름을 발랐다. 후에 여드름이 난 내 이마에 참기름을 바르려는 것만큼은 막아냈다.
만병통치는 아니어도 누구나 자신만이 생각하고 있는 특효약 같은 게 있을 터. 내가 아는 누군가는 소소한 병들은 활명수가 다 치료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누군가는 옥도정기를, 누군가는 된장을 누군가는 박카스를. 그에 비하면 할머니의 침과 기름은 그나마 믿음직한 구석이 있다. 기름과 침과 소금 향신료는 상처 치료의 오래된 처방전이니까. 돈키호테의 찢어진 귀를 치료해주던 목동의 연고처럼 말이다. 로즈마리 소금 침. 그 단순하지만 놀라운 조합.
기사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마법 향유가 있다. 돈키호테의 설명에 의하면 인간의 모든 통증과 고통을 순식간에 없애주는 약이라고 한다. 전투에서 몸이 두 동강이 났을 때, 재빨리 정확히만 연결하시라! 거기에 그 약 한두 방울만 뿌려보시라! 사과보다 싱싱한 몸을 보게 될 터이니! 이건 뭐 만병통치가 아니라 부활의 묘약이라는 말씀이시다. 돈키호테는 그 제조법을 알고 있었다. 재료는 구하기 쉽고 값도 싸다. 언제라도 만들어 사용할 수 있으니, 돈키호테가 용감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재료는 로즈마리, 올리브유, 레드 와인, 소금. 이걸 모두 한 냄비에 넣고 오래도록 끓인다. 끓이는 시간은 전적으로 감에 따른다. 충분히 끓였다고 여겨질 만큼. 끓인 재료를 유리병에 담고 세 가지 기도문을 외운다. 주기도문, 성모송, 사도신경. 각각 여든 번 이상을 외우는데, 한 구절 외울 때마다 성호를 긋는다. 이윽고 완성된 짙은 핏빛 액상. 냄새가 조금 역하기는 하지만 효능은 좋다. 누구한테 두들겨 맞았을 때, 특히 경찰 곤봉에 머리를 가격당해서 어질어질 할 때, 귀신에 홀린 것 같을 때, 마법에 걸려 뭔가 일이 안 풀린다고 생각될 때, 환상에 시달릴 때. 1리터 정도 마신다. 구토가 나오는 것이 정상이다. 뱃속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다 토한다. 이제 담요로 몸을 감싸고 잠을 자면 끝. 문제는 정식 기사 복장을 갖춘 사람에게만 효능이 있다는 것. 일반인들에게는 부작용이 더 많다는 것. 구토와 설사, 어지럼증, 식은땀, 오한과 발열, 환상과 환청, 발작 같은 건 각오해야 한다.
아무래도 할머니의 참기름을 바르는 편이 낫겠다. 아니면 어디 가서 기사 복장을 하나 훔쳐 오든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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