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들에는 ‘짐승’이 붙은 말이 대개 20개가 넘는다. 그 가운데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흔히 쓰는 말은 10개 정도이다. 그 중에는 가축을 뜻하는 ‘집짐승’과 가축이 아닌 ‘산짐승’도 있고, 물에서 사는 ‘물짐승’과 뭍에서 사는 ‘뭍짐승’도 있다. 기러기나 독수리처럼 날개가 달린 짐승을 뜻하는 말은 ‘날짐승’이며, 그 상대되는 짝으로 인식되는 말은 ‘길짐승’인 듯하다.
‘길짐승’의 구성을 ‘길’(道) + ‘짐승’으로 여길 수 있으나, 이는 정답이 아니다. ‘길짐승’과 ‘날짐승’은 뜻이 서로 짝이면서 단어의 구성도 같다. ‘길짐승’은 ‘기-’(동사 ‘기다’의 어간) + 관형형 어미 ‘-ㄹ’ + ‘짐승’이여, ‘날짐승’은 ‘날-’(동사 ‘날다’의 어간) + 관형형 어미 ‘-ㄹ’ + ‘짐승’인 것이다(‘날짐승’의 관형형 어미 ‘-ㄹ’은 어간 말음 ‘ㄹ’과 중복되어 삭제된 것으로 봄).
여기서 쉽게 품을 수 있는 의문이 시제가 미래가 아니며 추측, 의지의 의미도 없는데 왜 ‘-ㄹ’이 붙는가일 것이다. 예를 들어 ‘갈 사람’은 ‘가는 사람’이 아니라 이 시간 이후로 가고자 하는 사람을 뜻하지 않는가. 그런데 ‘-ㄹ’ 또는 ‘-을’에 이런 용법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해가 뜰 때 안개가 걷혔다’, ‘믿을 사람 없다.’, ‘책을 읽을 때 자세를 바르게 하자.’를 보면 이것들이 특정한 시제의 의미가 없이 뒷말을 꾸미는 역할도 함을 알 수 있다.
즉, ‘갈 사람’의 ‘-ㄹ’은 의지를 나타내는 용법이고, ‘길짐승’과 ‘날짐승’은 시제나 의지 여부, 추측 여부와 관계 없는 ‘-ㄹ’이 쓰인 것이다. ‘넓을 홍’, ‘거칠 황’과 같은 한자의 새김에 쓰이는 ‘-ㄹ’과 ‘-을’ 또한 이런 용법을 보이는 것이다.
김선철 국립국어원 언어정보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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