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판이 워낙 학대 사건 등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그럴 때면 여론이 들끓는 곳인데 요즘은 폭풍 속에 있는 느낌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개 물림 사건이 기사화되더니 결국 유명인이 연루된 사건이 발생하면서 심지가 타들어 가던 폭탄이 팡 터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많은 반려인이 속을 끓인다. 학창 시절 선생님이 지각하지 말라고 혼낼 때 정작 지각하는 아이는 자리에 없고 애먼 아이들이 단체로 혼나는 것과 비슷하다. 목줄 잘하고, 똥 잘 치우고, 교육 잘 시키면서 건강하게 개와 살아가는 사람들이 눈치를 보는 사이 정작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 하던 대로 하며 산다.
마음 아팠던 건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노견과 산책을 못 나가고 있다는 말이었다. 노견의 산책은 건강도 유지하고 기분을 전환시키는 소중한 시간이다. 개와 산책을 나가면 홍해가 갈라지듯 사람들이 피하는 상황이니 안 그래도 나이 들어서 추레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가 괜한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서 잔뜩 위축된 탓이다.
물론 문제 있는 반려인도 있다. 큰 개를 제어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 다니는 사람을 보면 나도 무서워서 피한다. 목줄 안 하고, 똥 안 치우는 사람도 많다.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우리 개는 안 물어요. 순해요”는 나도 당했다. 개와 산책을 나갔는데 반대편에서 줄을 안 한 소형견이 달려오고 있었다. 덩치 좋은 시추라서 8㎏이나 되는 우리 개 체중의 반도 안 되는 작은 개지만 달려오는 모습이 심상치 않아서 안아 올리려는 찰나 “걱정 마세요. 우리 개는 안 물어요. 순해요”라는 외침과 동시에 “깽”하는 비명이 들렸다. 어디 다쳤나 살펴보는 사이 “어머 죄송해요”라는 말을 남기고 개와 사람은 사라졌다. 우리 개는 각막을 다쳐 한동안 안과 신세를 졌다.
그래서 무책임한 사람들을 보면 화나지만 그런 사람보다 잘 키우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런데 이번 사건이 터지고 나니 ‘일부의 문제이고, 전체로 몰아가면 안 되고, 이번 일을 기회 삼아 사고를 예방하는 반려문화 전반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자.’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가장 나쁜 건 언론이다. 사람들이 개에게 물린 건 팩트. 그런데 팩트 너머의 본질과 핵심을 말해야 할 언론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사람들의 혐오 지수에 올라타서 덩실덩실 칼춤을 췄다.
맹견, 안락사, 물린 사람만 손해 등 자극적인 단어가 클릭 장사를 위해 동원되고, 비슷한 내용이 제목만 바꿔서 포털 사이트를 장악했다. 기사마다 문제의 본질을 지적하는 척하며, 대안을 내놓는 척하며 제시하는 자료들은 또 얼마나 엉터리인가.
동물 문제가 터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런 식의 반응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 동물, 성 소수자, 노인, 외국인 노동자 문제 등에 거의 비슷하게 연동한다. 사람들은 약자 문제의 본질에 관심이 없다. 약자는 지금과 같은 약자의 자리에 계속 머물기를 바라고, 언론은 거기에 비위를 맞춘다. “망치만 가지고 있으면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는 말처럼 망치질로 분노를 표출할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약자의 사건, 사고는 못으로만 보인다. 하지만 부분을 보고 전체를 본 것으로 추측하는 일은 오류를 발생시킨다.
모든 갈등에는 이유가 있는데, 이번 갈등의 원인이 ‘문제 있는 반려인’ 하나만은 아니다. 반려동물이 늘고 갈등도 느는데 관리 감독할 컨트롤타워의 부재(동물등록제가 실시되고 있지만 참여율은 형편없고, 외장형도 허용하고 있어서 정부는 관리해야 할 반려동물의 규모도 정확히 모른다), 관련 규제에 대한 실행 의지 없음(목줄 하기, 똥 치우기 등에 관한 규제는 있으나 마나 하고, 맹견 범위, 안락사 논의 등은 졸속으로 수정될 위기에 처했다), 교육의 부재(아이들은 제도권 교육 안에서 생명 교육은 고사하고 개에게 발을 구르거나 먹는 것을 뺏으면 물릴 수 있다는 안전 교육도 받지 못한다), 반려인 교육의 부재(TV 프로그램을 통해 정보와 지식을 얻은 사람들은 반려동물의 먹거리, 훈련법을 유행처럼 따른다) 등 사건을 발생시킨 원인은 복합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불거진 갈등을 조속히 해결하려는 자세는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평화교육자인 존 폴 레더락은 <갈등 전환>에서 갈등 ‘해결’이 아닌 갈등 ‘전환’을 제안한다. ‘해결’이라는 용어에는 강자가 갈등을 무마하기 위해 약자를 회유할 우려가 있고, 정당하게 제기되어야 할 중요한 이슈마저 사장되어버릴 위험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갈등은 그 자체로 갈등을 깊이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한다.
사실 수면 위로 불거진 이번 사건은 과거에 쌓였던 갈등의 결과물이다. 이 기회에 우리 사회가 동물을 대했던 방식,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 다음 세대를 교육하는 방식 등에 관해서 찬찬히 논의해야 한다. 갈등이 없는 사회는 없고, 갈등은 건강한 사회의 동력이다. 사회적 갈등이 성과 없이 과거로 뒷걸음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올바른 변화의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
참고한 책: 갈등 전환, 존 폴 레더락, KAP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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