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 핵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Lise Meitner, 1878.11.7 ~1968.10.27)는 독일 화학자 오토 한(Otto Hahn, 1879~1968)과 더불어 핵 에너지 실용화의 토대를 닦은 학자다. 1930년대 말 그들이 발표한 우라늄 핵분열 실험 및 이론 논문은 2차 세계대전 독일과 연합국(미국)의 핵폭탄 개발 경쟁에 불을 지폈다.
자연 상태의 가장 무거운 원소 중 하나인 우라늄-235는 다량의 양성자로 인한 전기적 반발력 때문에 불안정해서, 중성자와 충돌하면 분열하고 줄어든 질량만큼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 에너지 양을 공식화한 게 아인슈타인의 1905년 공식 ‘E=MC²’이었다. 질량에 광속의 제곱을 곱한 값. 광속은 무려 초속 30만km다.
오토 한은 우라늄이 중성자와 충돌해 다른 원소로 변환한다는 것을 실험으로 확인했고, 마이트너는 그게 바로 핵분열로서 아인슈타인 공식에 따른 에너지 변환 과정이며, 핵이 분열하면서 중성자를 추가로 방출하는 만큼 연쇄 분열도 가능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증명했다. 이후 전시 과학자들이 한 일은 우라늄-235를 정제하고, 중성자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아 핵 연쇄분열이 가능해지는 최소 질량(임계질량)을 파악해 원하는 시점에 핵분열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였다.
마이트너는 여성이고 유대인이었다. 그는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던 시대에 태어나 가정교사에게 배웠고, 대학(빈 대학)도 그가 23세 때 여성 입학이 허용되면서 진학했다. 그가 오스트리아 두 번째 여성 박사이자 최초의 교수인 것은 여성 제도교육의 첫 물결을 탔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학서도 연구소에서도 그는 극심한 성차별을 감당해야 했고, 1933년 나치 집권 후에는 인종 차별 때문에 교수직에서 해고당했고 1938년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면서 스웨덴으로 망명해야 했다.
그는 오토 한이 받은 1944년 노벨 화학상의 공동수상 영예도 누리지 못했지만 1966년 미국 원자력위원회가 수여한 ‘엔리코 페르미’상을 탔고, 후배 과학자들이 1992년 합성한 109번째 원소(마이트너륨)에 이름을 남겼다. 그는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을 염원한 과학자였다. 묘비에는 “리제 마이트너: 한 순간도 인간애(humanity)를 잃지 않은 물리학자”라는 글이 새겨졌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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