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방한 맞춰 한미공조 과시
정부가 핵 개발에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해외 주재 북한 금융기관 관계자 18명을 제재 대상에 포함시킨 문재인 정부 첫 대북 독자제재안을 발표했다. 제재의 실효성보다는 미국의 대북제재ㆍ압박에 한국도 동참하고 있다는 상징적 차원에서 취한 조치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국 방문을 의식한 결과로 풀이된다.
외교부는 5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의 충실한 이행을 위해 관련국들과 긴밀한 협의를 진행해 왔다”며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및 탄도미사일 개발을 목적으로 한 금융거래활동 차단을 위해 6일 부로 안보리 제재대상 금융기관 관계자 18명을 우리 독자 제재대상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중국 소재 조선무역은행 소속 김동철과 러시아에 있는 통일발전은행 소속 리은성, 중국 대성은행 소속 박문일, 리비아 소재 조선무역은행 구자형 등 18명의 해외 주재 북한 은행원이 새롭게 정부의 대북제재 대상에 오르게 됐다.
그러나 이들은 지난 9월 미국 재무부가 북한 은행 8곳과 이들 은행 직원 26명과의 금융거래를 동결시킨 대북제재안에 포함된 인물이다. 미국 정부의 제재대상에 지정되면 미국과의 거래는 물론 제3국 금융기관과의 거래도 사실상 중단된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사실상 이미 배제된 은행 직원들을 재차 제재대상에 올린 것으로 정부의 이번 대북 독자제재가 갖는 실효성은 크지 않은 셈이다.
개인 외 은행 등 금융기관은 별도로 제재하지 않은 것도 특징이다. 정부 관계자는 “금융기관을 제재하기 위해서는 법률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정보가 더 필요하다”며 “대북 5ㆍ24조치와 개성공단 가동 중단 등 이미 최고 수준의 제재를 가하고 있어 실효적 추가 제재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제재안 발표는 오히려 정치적 타이밍에 초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 한국, 중국으로 이어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동북아 순방에 앞서 대북 한미공조를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다만 굳건한 한미동맹을 강조하면서도 남북관계 개선 여지도 열어둬야 하는 측면을 감안해 제재의 수위를 정한 것으로 보인다. 국책 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는 “북핵이 이번 순방의 최우선 의제인 만큼 한미일이 북한을 고립시키고 있는 모양새가 필요했을 것”이라며 “우리 정부도 제재의 실질적 의미보다는 트럼프 방한에 앞선 선물 격으로 준비해 왔다”고 밝혔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