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3일 법원 구성원간 갈등과 혼란을 없애기 위해 사법부 현안으로 제기돼온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재조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조사의 주체와 대상, 방법 등 구체적 사항에 관해선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조사가 그 동안 만연했던 사법부 내 불신과 갈등이 말끔히 해소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김 대법원장의 재조사 결정은 블랙리스트 의혹을 해결하지 않고는 사법개혁과 사법부 신뢰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보인다. 블랙리스트 파문은 지난 3월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가 문제의 컴퓨터에 대한 검증도 없이 사실무근이라고 결론을 내면서 불거졌다. 급기야 전국의 판사들이 법관대표회의를 열어 재조사를 요구했으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이를 거부하자 사법부 내부 갈등은 심각한 양상으로 치달았다. 당초 블랙리스트 의혹을 최우선적으로 풀겠다고 했던 김 대법원장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한달 넘게 걸린 것은 그만큼 이 사안의 폭발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작 문제는 이제부터다. 대법원이 밝힌 대로 조사 주체와 대상 등을 놓고 이견이 만만치 않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측은 조사 권한을 자신들에게 위임해달라고 요구하고 있고, 고위 법관들은 대법원장이 조사에 참여할 인사를 직접 지명하도록 주장하고 있다. 이번 재조사 결정의 취지는 소장 판사들의 불신 해소에 있고, 그러려면 이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다만 조사위 구성은 법관대표회의 소속뿐 아니라 지위를 막론하고 다양한 부류의 법관들이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조사 위원을 둘러싸고 편향성 시비가 생기면 조사 결과 자체가 논란의 불씨가 될 수 있다.
판사 블랙리스트는 과거에도 설이 무성했다. 게시판 글이나 판결 등을 분석해 법관 인사나 연수자 선발 때 활용해왔다는 것이다. 특히 박근혜 정권 들어 권력 주변에서 석연찮은 정황이 잇따르면서 사법부 불신이 커졌다.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업무일지에 등장한 ‘법원 길들이기’나 ‘법원 지도층과의 커뮤니케이션’ 등의 문구는 청와대와 대법원의 부적절한 거래 의혹만 남긴 채 덮였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존재 여부를 떠나서 판사 블랙리스트가 거론된 것 자체가 사법부엔 수치스런 일이다. 재조사 결과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확인되면 관련 인사들의 형사처벌 등 판사 사회는 큰 홍역을 치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사법부가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과정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